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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 완역본 전집
2002-03-07

너무 늦은, 너무 반가운

이제야, 드디어, 마침내 완역본 셜록 홈스 전집이 나왔다. 너무나 늦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황금가지에서는 와트슨 박사가 처음으로 홈스를 만나는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현재 <네 사람의 서명> <바스커빌 가문의 개> <공포의 계곡> 4권이 나왔고 앞으로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10권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아르센 루팽 선집과 애거사 크리스티 선집도 나온다고 한다. 이것을 기화로 한국에서도 추리소설이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힘든 일이겠지만.

어린 시절 아동용으로 각색된 몇 작품에서 ‘명탐정 셜록 홈스’에게 반하고 애거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을 거쳐 하드 보일드와 일본의 사회파 추리까지 많은 추리소설을 접했지만 홈스처럼 매력적인 탐정을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대의 명탐정이나 비정하고 고독한 형사들도 매혹적이긴 하지만 홈스의 영역을 넘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홈스는 근대의 합리적인 이성이 최고도에 달한 ‘사고하는 기계’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최단거리를 찾아내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 홈스를 어린 시절 만난 뒤,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퍽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추리소설의 고전이나 명작을 온전한 모습으로 만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니까.

조각조각이지만 머리 속에 비교적 선연하게 남아 있던 홈스에 대한 기억들은, 전집을 보면서 되살려지고, 또 전혀 다른 면모로 비치기도 한다. 홈스는 주어진 정보를 관찰하고, 추리를 통해 원인과 이유를 밝혀내는 현대의 마법사, 아니 과학자다. ‘추리를 정밀과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면서, 철저하게 실용적인 인간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지 태양이 지구를 도는지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당대의 정치인이나 철학자에게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냄새만 맡으면 향수의 종류를 알아내고, 미량이 묻은 흙을 보고 단번에 어느 지역의 것인지 알아내는 홈스의 능력은 단지 지식의 축적이나 능력의 개발만이 아니라 분명 신이 내린 선물이다.

그러나 홈스는 철저하게 냉소적인 사람이다. 사건이 없을 때면 늘 마약에 절어 지내며 ‘나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혐오하네.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된 상태를 갈망하지. 내가 이런 특수한 일을 선택한 이유가, 아니 만들어낸 이유가 바로 그걸세’라고 말한다. ‘정말 어둡고 우울하고 공허한 세상 아닌가… 나한테 능력이 있으면 뭘 하겠나? 그걸 발휘해볼 기회가 없는데. 진부한 범죄, 진부한 삶, 지상에서 진부한 것을 빼면 아무것도 없네.’ 홈스가 해결한 사건은 모두 형사들의 공으로 돌아가고, 그는 단지 ‘자문’탐정으로 만족한다. 그의 능력은 사회를 바꾸거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 완역본에서 두드러진 것은, 홈스가 개입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배경이다. <주홍색 연구>에서는 프로테스탄트의 박해를 피해 유타로 이동한 모르몬교도가 똑같이 저지른 타인에 대한 잔인한 범죄를,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동인도회사의 폭정에 항거했던 세포이 반란을 배경으로 탐욕스러운 영국인의 초상을 고발한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전집은, 지금 읽어도 전혀 광채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문장도 나름대로 맛깔스럽고, 홈스와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그려내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기민한 추리와 치밀한 덫, 미래의 사건에 대한 절묘한 예측, 그리고 참신한 이론’을 만들어낸 이는 셜록 홈스의 창조자인 코넌 도일이었던 것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