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동아(東亞)가 동아시아의 한자말이었지…. 그런데, 하이고. 중국문자는 띄어쓰기를 안 하니 쌈빡하다 싶었는데, 직접 ‘참여측’이 되어 팸플릿과 책자를 받아보니 쌈빡하기는커녕 빡빡하면서 그냥 무장무장 지리할 듯 지지부진할 듯하다.
게다가 부제는 더 거창하게, ‘신자유주의하 동아시아의 문화적 소통과 상생’. ‘주최측’ 백원담은 내 기를 꺾어놓고야 만다. 형. 동아시아 관련 자료집을 한 다섯권 내야 하는데 어디 출판사 좀 없을까?… 왜 전에 어디서 내준다더니? 응, 원고가 아니고 비블리오그래피라서…. 뭐, 뭣? 그럼 책 제목만 다섯권이다 이거냐? 응. 미치겠군….
청중석은 한산했지만 중국·일본 참석자들은 꽤 탄탄하고 참신한, 그리고 저명한 신세대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시인 김지하가 ‘상고시대의 전통을 되살리며 들뢰즈까지 포괄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카오스모스를 만들어가자’는 요지의 기조 강연을 했고(역시 무게야, 근사한 무게…. 주최쪽 한명의 반응은 그랬다) 한·중·일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에 대해서는 중국·일본쪽 참석자들의 토론 혹은 평가에 열의와 애정이 느껴졌다.
오후는 장르별 보고를 말 잘 못하는 예술가들이 다섯건이나 해야 했으니, 지루했다. 하지만 열의는 더 짙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종합토론(학자-예술가, 발제-토론자가 총집합한)을 평론가 최원식이 이끌었는데, 노련한 인품의 발현이었다고 할 만하다(저게 동아시아적 인품이란 거야…. 내 반응은 그랬다).
술자리는 흥건했다. 무엇보다 중국 소설가 여화와 그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어깨동무를 하니 피로가 싹 가신다. 그런데, 그러나, 동아시아 소통과 상생. 그건 우선적으로 한반도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니, 술도 확 깬다. 중국과 일본이 무에 아쉬워서 소통을 하고 상생을 하겠는가? 참석해준 지식인-예술가들이 고마울 뿐이다.
한강 이남을 내려오면 중국의 힘이 다하고 한강 이북을 올라가면 일본의 힘이 다한다는, 이제는 무기력해진 민간신앙을 진정한 상생의 소통문화로 바꾸는 일은 바로 한반도, 우리의 어깨에 놓인 사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단의 고통을 명분삼는 일보다는, 분단 때문에 형편없이 좁아졌을 우리의 시야를 치열하게 반성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게 진정으로 분단을 극복하는, 그렇게 통일을 향하는 첫 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