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곳 없이 버려진 음지의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본드불고 떡치고 담배피우고 술마시고 싸우다가 얻어맞고 결국은 경찰소로 잡혀가는 그들이다. 그들은 가정적, 사회적 폭력 앞에서 무방비 상태고 스스로 그 폭력의 상태를 재현한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인 착취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문제의식이 살아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암울하다.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출구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래서 때로는 이 ‘막힌 곳’에서 노는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암울한 공간의 아이들은 인생 한때의 파티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생양아치들의 즐거운 지옥. 그렇다면 한번 끝내주게 노는 걸 보여주는 영화인가.
감독 임상수는 “코믹하고, 찢어지고, 뽀개는 느낌의 한마디로 ‘생양아치’ 같은 음악”을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톤은 “경쾌했으면” 했다고 한다. 따라서 음악은 일종의 파티음악일 수도 있다. 음악을 맡은 사람은 문준호. 그는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일본 뮤즈음악원에서 작·편곡을 배우고 돌아와 그동안 이현우, 이은미, 소찬휘, 포지션 등 메이저 가수들의 공연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적이 있다. 이번 영화음악을 이끌어가는 악기 역시 기타이다.
강력한 테크노풍의 비트를 바탕에 깔고 지미 헨드릭스적인 느낌의 드라이브를 살리는 톤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약간은 무거운 이 톤은 ‘오토바이'에 잘 맞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새리의 오토바이가 분위기의 초점인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뽕짝리듬을 배경에 깔고 이박사풍의 코믹한 보컬이 들어가는 음악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 오히려 아이들의 일상은 슬프게 그려진다. 아이들이 바다로 떠나는 장면에서는 감상적인 거트 기타가 한몫 하고 있다. 아마도 이럴 때는 아이들이 아름다워 보여야 할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황량한 바닷가 풍경이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다.
O.S.T의 해설지에 쓰여 있듯 가장 중요한 건 전체적으로 ‘코믹함 속에 풍자가 깔리는 톤’이다. 역시 중요한 건 ‘풍자’이다. 음악에서의 ‘풍자’란 무엇일까. 어려운 대목이다. 무엇으로 ‘풍자’를 표현할까. 풍자는 비꼬기이다. 즐거운 코미디 파티음악이지만 그 안에 누군가를 비꼬는 듯한 톤이 살아 있으면 풍자가 된다. 그러려면 ‘적의’나 ‘경멸감’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음악들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조금은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보다는 더 진지한 느낌이 강하다. 문제의식의 돌부리들을 자꾸 생각하다가 더 막나가는 파티영화로 나가지 못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라면 아쉬운 대목인데, 음악도 그에 조응한다. 더 막나가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기타 드라이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악들은 파티음악치고는 약간은 무겁고 복고풍이며 그렇다고 완전 뽀개는 음악도 아니다. 뽀개는 음악치고는 조금 가볍고 덜 막나간다. 반면에, 애상적인 멜로디가 흐르는 음악들은 너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음악들이 되려고 노력한 감이 있다. 그 음악들도 아름다운 장면을 감싸지 말고 그걸 다시 상대화시키는 심리적 효과를 낼 수 있었더라면 상당한 음악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경멸감이나 적의 같은 걸 의도하고 표현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마음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생양아치가 되는 일이 힘들듯 그런 영화를 만들고 그에 걸맞은 음악을 끼워맞추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아주 싸늘한 쓰레기는 돼보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음악들이 역설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풍자적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