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그런데 ‘순정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경우는 의외로 적다. 타깃은 제쳐두고라도, 섬세한 캐릭터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램프의 와 <카드캡터 체리>를 제작한 일본의 매드 하우스가, 자사를 소개할 때 ‘순정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곳’이라고 내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천계영의 <오디션>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은 진작부터 알려진 사실. 민경조 감독이 지휘하는 85분 분량의 <오디션>은 오는 6월 개봉을 목표로 진행중이다. 월드컵과 겹치는 이 시기가, 극장 잡기 힘든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오히려 나을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레이아웃 80%, 원화 60%, 배경 50%, 동화 30%가 완성된 상태. 애초 계획보다 늦어지기는 했지만, 무한기술투자와 개인 주주에게 18억원 투자를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제작진은 초기부터 순정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톡톡히 실감했다고 한다. 캐릭터 때문이었다.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오디션> 팬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캐릭터 설정에 유난히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움직이는 영상에도 적합하고 원작의 느낌도 살아 있는 캐릭터들은 그렇게 나왔다.
작품이 작품인 만큼 ‘음악’ 또한 관건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홍익대 부근을 전전한 끝에 찾아낸, 김성수씨가 음악감독으로 합류하면서부터 제작은 활기를 띠었다. 음악감독이 로케이션은 물론 시나리오 회의까지 함께 참여한 덕택에 <오디션>에 등장하는 연주장면은 사실감을 더한다.
음악은 이제 완성단계여서 3월에는 마스터링 작업을 할 예정이다. 김종서, 박혜경, 닥터코어911, 에브리싱글데이, 한상원 등이 이미 녹음을 끝냈고, 파브리스 팔코(Fabrice Falco)와 라르캉 시엘의 편곡음악도 삽입될 예정이다. 장르는 힙합에서 하드코어, 록까지 다양하다. 주제음악과 배경음악 이외에도 실제 토너먼트에 등장할 곡들이기에 ‘사실적인’ 연주에 치중했다고 한다. 에브리싱글데이가 1차 토너먼트에서 참가하는 황보래용의 목소리로, 김종서가 천사표 밴드 용근이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박혜경이 부르는 <발렌타인 No.1>은 마스터 곡이 될 예정. 작품의 20%가량이 음악만으로 구성될 정도로, <오디션>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궁극의 목표는 바로 ‘드라마로서 어필하기 위한 음악’이다.
민경조 감독은 “순정만화와 뮤직이 만난 느낌”으로 <오디션>을 제작하고 싶다고 한다. 예쁜 화면이 있는 사실적인 작품. 그래서 배경에도 몹시 공을 들였다. 달봉이의 고향은 경기도 국수 역을, 래용이의 학교는 서초고를 모델로 했다. 결전의 무대로 등장하는 여의도 고수부지의 이미지는 이미 수차례 소개된 바 있다. 작품을 잘 들여다보면 예술의전당과 양평동 공장, 시립아동병원, 개포동 연립주택 등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디션>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처럼 원작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온 작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원작 완결 전에 시나리오가 쓰인 만큼 오리지널 에피소드 재구성은 피할 수 없었고, 영상과 출판언어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감독의 생각 때문이다. 실제 8번의 토너먼트는 애니메이션에서 서너번으로 끝나게 된다. 말하자면 경쟁관계를 줄이고 드라마적인 재미를 추구할 생각인 것. 감독의 표현대로 “요는 집중도”이다. 85분간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을 것인가, 강약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
지난 85년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해 창작 열병을 몹시도 앓았다는 민경조 감독은 <오디션>에서 자신의 “까탈스러움”을 한껏 발휘할 생각이다. 퀄리티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성실하게 한길을 걸어온, 가식없는 사람이 만드는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그의 까탈스러움이 믿음직스럽기 때문이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