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많은 이들에게 힙합이 댄스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지던 시절, “노래 좀 띄워보려 RAP을 남용하지 마/(중략) 제발 부탁이니 랩을 모욕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중략) 그 수많은 RAP맹들을 우리가 깨우칠 거야”라며 날선 출사표를 내뱉던 무서운 아이들이 있었다. 댄스 리듬 사이에 추임새처럼 끼어든 랩이나 박스티에 힙합바지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삶과 현실을 비판적으로 곱씹는 태도의 힙합을 얘기하던 듀오 갱톨릭.
97년 국내 인디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에서 발매된 컴필레이션 <원데이 투어즈>에서 <변기 속 세상>을 발표하며 데뷔한 이들의 첫 목소리는 그랬다. 스무살 즈음 눈에 비친 변기 속 같은 요지경 세상에 대한 갑갑증을 터뜨리고, 어줍잖은 힙합 패션이 유행하는 천편일률적인 대중음악계에 냉소를 던지는 당당함, 혹은 당돌함. 담백하면서도 위협적인 당당함이 묻어나는 래핑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리듬의 맛을 살리며, 갱스터랩을 선호하는 취향답게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와 일상에 대한 날선 불만을 직설적으로 털어놓은 1집 <A.R.I.C>을 98년에 내놓은 갱톨릭은, 국적없는 패션으로 떠돌던 한국의 힙합문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4년 만에, 멤버들의 병역문제 등의 이유로 오래 미뤄져왔던 그들의 2집 <Windproof>가 나왔다. 원래 김도영과 임태형으로만 활동한 갱톨릭은, 그동안 클럽 공연에서 의기투합한 이래 함께 공연을 해왔던 오현탁과 김희정이라는 두 멤버를 각각 99년 가을, 2000년 봄에 새로 맞아들이면서 식구가 4명으로 늘어났다. “햇수로 4년, CD 작업에만 6∼7개월 이상의 공을 들인” 2집은, 새 멤버들까지 4명의 다채로운 래핑과 함께 1집보다 매끈하고 세련된 만듦새를 보여준다. 얼핏 눈에 띄는 변화라면 사회에 대한 직설적인 분노보다는 일상 속의 작은 진실들로 파고드는 가사와 선율이 한결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멤버들이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각자의 래핑 파트를 맡아 가사를 지은 다음 맞춰보는 식으로 작업한 곡들에는 <Hate>처럼 1집의 연장선에서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불만, “우리 또한 누구 평가할 입장은 못 되지만 하고픈 말은 단지 아무런 가식없이 솔직히 바로 하기/(중략) 한 가지 더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는 거 까놓고 아닌 것들은 아니라는 거”라는 <Exodus>와 <H.I.P.H.O.P.>처럼 자신들의 힙합에 대한 고민, <취두리 2001>이나 <Wanderer>처럼 세상에서 좌표를 찾기 힘든 젊은 날의 솔직한 감성이 고루 담겨 있다. “일상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일상에서 말하듯이 들려주고 싶었다”는 2집은, 살아가는 태도만큼이나 땅에 발딛고 선 생활을 돌아보는 시선으로 더 감성적이고, 더 날이 서 있다.
힙합에서 아무리 가사가 주라지만, 듣는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가요 같은 도입부에 좀 놀랄지 모르는 <Time>의 선율, 빠르고 느린 디스코풍의 샘플링을 곁들인 <One Fine Day>나 <Let’s Get High>의 흥 등 끊임없이 선율과 조임과 느림의 조화가 맛깔스런 래핑의 리듬이 선사하는 재미도, 2집에서 더 풍부해졌다. 진짜 힙합이 뭐냐는 도식을 떠나 윤기있는 음악으로 돌아온 갱톨릭에게서는, 건강한 자유로움이 들린다.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