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뮤지션들이 어우러져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패거리(crew) 문화는 힙합을 움직이는 힘 중 하나다. 한국의 힙합 역시 이같은 ‘크루’들이 힙합 신(scene)을 이끌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양현석이 원타임과 지누션을 내놓으면서 가장 먼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YG 패밀리’, 지금은 없어진 신촌의 클럽 마스터플랜을 주축으로 활약하던 ‘MP 힙합’, 그리고 드렁큰 타이거, CB Mass, 최근 ‘T’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인 윤미래, 션2슬로우, 디지 등이 모여 만든 ‘무브먼트’(Movement)가 바로 그들.
이 가운데 요즘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인기를 자랑하는 크루는 단연 무브먼트일 것이다. 드렁큰 타이거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신보를 발매하고 활동중인 CB Mass와 T는 가요를 듣는 이들에게건, 힙합을 듣는 이들에게건 인기를 끌고 있으니까. 최근 이 둘의 콘서트를 비롯해 다양한 힙합 플로어에 얼굴을 내비치며 왕성한 라이브를 펼치는 뉴페이스들이 있다. ‘한국 힙합의 대파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 3인조 힙합 그룹 부가 킹즈(Buga Kingz)다.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부가 킹즈는 한국 힙합이 지금까지 오는 데 숨은 공로자 역할을 해온 바비 킴(Bobby Kim)이 결성한 팀이다. 바비 킴은 한국 힙합의 음지와 양지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며 실력을 닦아왔다. 젝스키스, 영턱스, NRG 등의 랩 프로듀서와 엄정화, 핑클, 소찬휘 앨범의 세션 래퍼로 주류 댄스음악계에서 활약하는 한편, 천리안 힙합 프로젝트 앨범과 앨범에 참여하는 등 언더그라운드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고수했다. 바비 킴의 감각적인 음악성은 국내 힙합 신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드렁큰 타이거의 3집 앨범에 수록된 <Bobby’s Gon Get You> 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이, 흐느적거리는 멜로디와 리듬으로 대표되는 그만의 독특한 플로우는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부가 킹즈의 데뷔앨범 <Bugalicious>는 톡톡 튀는 재능으로 무장돼 있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사운드 메이킹을 구사하는 바비 킴의 프로듀싱 감각을 엿볼 수 있으며, 뭉개지지 않는 정확한 랩을 구사하는 바비 킴 자신과 두 멤버 간디와 주비의 엠씨잉(Mcing), 그리고 트랙 하나하나마다에 담긴 재치와 위트가 재미있다. 무브먼트 패밀리와 허니 패밀리의 디기리, 힙합 단골 여성 코러스 신지선 등의 우정출연(?)도 빛을 발하고 있으며, 유승준의 <가위>를 작곡하고 CB Mass의 1집을 프로듀싱한 이윤상이 공동 프로듀서를 맡아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타이틀곡 <Buga Buga (Get It Up)>은 에 수록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Some Of Dis>를 좀더 대중적인 힙합곡으로 리믹스한 것으로, 일상과 고정관념에 갇혀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라이브 무대에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Buga Chop>은 갱스터랩의 본산인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분위기가 가득한 펑키한 느낌의 트랙이며, 저절로 흥이 나는 마이애미 리듬의 <Johny Boy>는 ‘Johny’라는 가상인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한 재미난 가사와 화려한 코러스, 신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고릴라, 하이에나, 기린 등 동물 입장에서 바라본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세상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동물원’도 만족스럽다.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더이상의 오버와 언더의 편가르기가 무의미한 것임을 받아들여 그 간극(?)을 무너뜨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요즘, 부가 킹즈는 그 움직임 가운데 윤활유적인 역할을 하려는 듯하다. ‘힙합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그들의 열린 마인드와 탄탄한 음악은 한국 힙합의 폭이 넓어지고 성숙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이진백/ 자유기고가 ljback69@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