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내세울 건 없어도 왕따를 당할 정도는 아닌 우리의 청춘 코마쯔. 하지만 ‘평범’만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순 없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의 ‘촌스럽다’는 평가가 그의 학창 시절에 지독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짱’에게 얻어맞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연애에 목을 매는 남학생에게 여자아이들의 외면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이럴 때는 당연히 ‘변신’의 계기가 다가오는 것이 순리. <바벨 2세>처럼 어느 밤 납치되어 “네 몸 속에는 세계 최고 미남자의 피가 흐른다. 이제 깨어나 전세계 미소녀들을 구원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좋겠지. 하지만 코마쯔에게 주어진 변신의 도구는 조금 등급이 낮다. 그것은 바로 쭉쭉빵빵 도깨비 자매가 운영하는 남성 전용 미용실 ‘미남 월드’. 그래도 믿을 곳은 여기밖에 없다. 하루빨리 미남자로 거듭나, 꿈에 그리던 여자친구를 쟁취해내자.
<해피매니아>로 20대 여성들을 직격, <젤리 인 더 메리 고 라운드>로 잘 나가는 틴에이저들을 공략, <젤리빈즈>로 중학생 패션 리더들을 포섭해온 왕성한 정복욕의 안노 모요코. 이제는 소년들의 사냥에 나섰다. 그렇지만 그녀의 주무기인 ‘연애’와 ‘외모지상주의’는 버릴 수 없는 것. 평범한 소년들에게 최고의 미소년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며 꼬여내고 있는 것이다.
만화 독자들에게 꽃미남 애호증은 무척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만화 속 환상 세계를 공유하는 ‘순정 밀교’의 은밀한 집회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TV, 영화, 잡지 등을 통해 ‘꽃미남 숭배론’이 엄청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면서, 십대들은 물론 20대, 30대를 넘어 아주머니, 할머니들까지 ‘사실은 나도’라며 대대적인 커밍아웃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씨네21> 역시 그러한 이데올로기 생산에 예외는 아니다). 어쩐지 그것은 마초 남자들의 오래고 오랜 ‘쭉빵 미녀 애호’에 대한 적극적인 대항의 무기로 더욱 거센 칼날을 내세우는 듯하다. 마치 남자들의 룸살롱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 호스트 바 옹호론을 들고 나오는 것처럼, ‘미소년 애호’는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냄새까지 풍긴다.
꽃미남 애호론의 선두
솔직한 만화 그리기에 둘째가기가 서러운 안노 모요코의 <꽃과 꿀벌>(학산문화사)은 이러한 꽃미남 애호론의 선두에 서 있다. 비록 소년만화의 틀을 썼지만, 사실 이 만화는 노력하는 꽃보다는 거만한 꿀벌들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 코마쯔가 온갖 역경을 겪고 미소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성공을 기도하기보다는, 그가 라이벌에게 휘둘리고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놀림받는 것을 깔깔거리며 내려다본다.
그래서 그녀가 하사한 코마쯔의 라이벌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인물이다. 라이벌 야마다는 한눈에 알 수 있는 최악의 추남. 그런 주제에 극도의 왕자병까지 걸려 있다. 뭐 좋다. 그런 놈들은 항상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런 놈이 예쁜 여자친구까지 가지고 있고, 게다가 그 여자애를 자기 맘대로 깔보고 가지고 논다는 점이다. 정말로 코마쯔류의 평범 소년이 가장 혐오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노 모요코는 야마다를 단순한 ‘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코마쯔를 놀려먹는 도구로 이용한다. 그래서 만화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미남 천국’의 도깨비 자매로 하여금 야마다를 진짜 최고의 미남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나서도록 한다. 자신이 미남으로 변신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여겼던 곳마저 야마다의 손에 넘어간 지금, 코마쯔는 어떻게 해야 미남이 되어 모델선발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을까?
나름대로 펼쳐놓은 승부의 장치가 꽃들의 투지를 불타오르게 하지만, 여전히 코마쯔가 <꽃과 꿀벌>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기에는 장애들이 많다. 그것은 이 만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 중심이 분산되어 있어서, 코마쯔에게 이입되는 감정의 강도가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깨비 자매나 야마다는 말할 것도 없고, 설정상으로는 부차적 인물군으로 나오고 있는 여학생 무리들도 사실상 코마쯔의 판정관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무게를 결코 얕볼 수 없다. 그러니까 이 만화의 주인공은 코마쯔를 둘러싼 여성 전체이고, 착한 여학생이 나타나 “코마쯔, 네가 꽃미남은 아니지만 착하고 독특하니까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는 것이다.
안노 모요코 만화의 미덕은 무엇보다 솔직하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가차없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꽃미남 숭배론인 <타로 이야기>(모리나가 아이)의 번외편을 보자. ‘얼굴 밝힘증’을 극복하고 평범하지만 다정한 소년과 사귀어보려는 미진의 결심은 미남자의 정원의 웃통 벗은 모습에 날아가버린다. 이것이 시대의 대세인 것이다. 소년들이여, 이 모진 세상을 살아가려면 땀내나는 야구복 따위는 벗어버려. 얼굴에 흉터라도 남으면 어떻게 해. 대신에 피나는 다이어트와 피부관리. 그도저도 안 된다면 전신 성형으로 가자! 이 누나가 잘 인도해줄게.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