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란’이라고 하면 흔히, ‘김지하란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혼동되는 울림을 갖기 십상이지만, 내게는 아직도 많은 부분 ‘돈’을 연상시킨다. 김지하는 80년부터 장일순에게 ‘란’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1984년 사무실을 꾸려야 하는 공개운동단체들이 거의 난립하다시피하면서 재정 조달의 가장 중요한 ‘품목’ 구실을 했다.
그때 ‘지하란’을 가장 많이 약게 또 높은 값에 팔기로는 ‘전문가’격인 미술평론가 유홍준 외에 이해찬(전 교육부 장관. 당시 민통련 살림 담당이었다)이 단연 고수였는데 그의 ‘판매전략’이 기막히다. ‘이대 국문과 출신’을 집중공략해야 한다는 것. ‘이대’는 ‘겉멋’(이대 출신들에게 죄송)과 ‘돈많은 신랑’(그 신랑들께도 죄송)을, 국문과는 국학적 자존심을 지시하고 그렇게 ‘이대 국문과’는 그 둘의 결합 혹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케 했을 것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그렇기로, ‘지하란’이 돈부터 연상시킨다면 운동-직업병이거나 예술감의 치명적인 손실일 것 또한 분명한데 이 전시회는 그것을 다소 극복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김지하의 예술에는 여성적 섬세와 남성적 웅혼의 극치가 공존한다.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성(性)의 극복’이라고 믿는 나로서 이 점은 놀라울 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상에도? 그렇다.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정치적 독재에 치열하게,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맞섰던 그가 생명사상을 더욱 심화시킨 것 또한 놀라울 뿐,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미학원리로서 갈등과 사상원리로서 상생이 또한 공존한다.
다만 나는 그의 예술과 사상이, ‘성이 혼동되던’ 근대 이전의 모처(某處)를 지향하는 게 아닐까 의심하며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언뜻 가장 중세적으로 보이는 사란(寫蘭) 분야에서 그가 내 의심을 말끔히 씻어준다. 현대사 질곡의 한 상징인 김지하 현상 혹은 사태 혹은 사건의 역정이 몇 가닥 안 되는 ‘란’의 ‘미학적 과정’으로 전화돼 있는 것이다. 그는 인사말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다. 혼돈란(渾沌蘭)과 정란(正蘭) 사이를 왕래하는 과장… 에서 무슨 한 순간의 빛이 있어 난다운 난…. 이것이 ‘카오스모스’가 아닐까?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재정과 예술을 탁월하게 결합, ‘모던 발레’의 길을 열었지만 ‘모던 발레’ 자체가 결국 ‘모던 댄스’에 대한 화려한 자본-절충주의적 반동(反動)에 그쳤다. 위 한마디로 하여 김지하는 그보다 위대하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