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재동의 만화를 처음 만난 것은 <한겨레신문>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창간된 신문에서였다(시위현장의 깃발이나 노동조합의 회보에서나 봄직한 백두산 천지 그림이 ‘일간’ 신문의 제호에 인쇄되어 있었다). 80년대 거세게 불어닥친 민주화의 열기 속에 국민주주운동으로 탄생한 신문의 2면에는 늘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이 있었다. 박재동의 만화는 시사만화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을 넘어서며 다양한 용도로 진화했다. 신문에 수록된 만화는 대자보를 장식했고, 자료집에 수록되었다. 격정적인 폭로와 서정적 이야기, 만화의 웃음을 가장 적절히 사용한 유쾌한 풍자와 금단의 영역이었던 정치인들에 대한 명쾌한 비꼼. 박재동의 만화는 그 시절 나(우리)에게 가장 선명한 정치적 상징이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많은 젊은이들이 박재동의 만화를 보며 정치적 올바름을 배워나갔다. 나의 정치적 입장의 8할은 박재동 만화가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만화의 힘을 아는 작가
박재동 만화의 힘은 만화에 대한 오마주에서 시작된다. 박재동은 만화가게의 아들로 자라났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해 휘문고, 중경고에서 미술선생님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받았던 만화의 세례는 그를 만화가로 개종시켰다. 한겨레신문 공채를 통해 만화가로 개종한 박재동은 근엄하게 존재하던 중앙 일간지의 시사만화를 만화의 힘으로 변화시켰다. 박재동은 독자들이 만화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만화가 어떤 식으로 대중과 만나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는가, 어떻게 생략과 과장을 만들어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박재동은 한겨레그림판을 통해 수십년 동안 변함없던 정치만평의 형식에 과감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고정된 칸을 ‘칸’이 아닌 ‘화면’으로 사유했다. 그리고 ‘화면’을 제어했다. 필요에 따라 칸을 나누고 이야기를 끌어냈다. 말풍선이 들어오고, 나뉜 칸을 통해 서사가 확장되었다. 두 번째, 풍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심청전>과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서사의 상징들로 풍자를 꾸몄다. 이야기의 놀랍고도 신비로우며 풍부한 힘은 풍자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다. 그 결과 한번 보고 마는 시사만화가 아니라 이야기에 실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시사만화가 되었다. 세 번째, 강렬한 아이콘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황지우가 지적한 대로, 박재동이 그린 인물들은 역할에 따라 전형적인 아이콘으로 표상되었다. 악어의 상을 갖고 있는 안기부 직원, 재벌이나 정치인의 어리석어 보이는 얼굴, 노동자나 학생, 전교조 선생님들의 친근하면서 스마트한 얼굴까지. 이러한 친숙한 도상은 올바름에 대한 박재동의 입장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목 긴 사나이>에는 박재동이 가려 뽑은 한겨레그림판의 1칸 만화와 함께 세로로 길게 연재된 그림 이야기와 <말>에 연재된 2쪽짜리 그림말, 그리고 그림 이야기의 후속인 책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여기까지는 5년 전 <목 긴 사나이> 초판에 수록된 원고들이며,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읽다보면 타임머신을 탄 듯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도 있지만, 서사의 폭이 확장된 그림 이야기의 문제의식은 2001년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간략한 약화풍 그림보다 펜으로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들에 주목하라. 일본군 성노예 문제나 제주도 4·3항쟁, 직장여성 문제 등 박재동이 약자들에게 보여주었던 애정의 폭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정판에는 중국 방문기가 빠지고, 시사애니메이션 대표작 3편과 박재동이 처음으로 시도한 중편 극화 <샤위나>가 수록되어 있다. <샤위나>는 SICAF 콜렉션에 수록되었던 만화로 시사만화, 콩트 형식의 서사가 확장된, 시사만화가에서 애니메이션감독으로 변화해간 박재동의 서사에 대한 고민과 애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샤위나>가 보여주는 서정성은 이미 한겨레그림판에서 충분히 확인한 것이니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2001년의 마지막 달. 나는 새롭게 출간한 박재동의 <목 긴 사나이>를 다시 본다. 그가 골라낸 시사만화의 걸작들과 세로로 긴 칸만화 그리고 멀리 실크로드를 탐사하고 작업한 단편 <샤위나>까지. ‘박재동’이라는 한 작가의 성과가 녹아 있는 ‘작품집’이지만, 나에게는 작품집을 넘어서는 또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시절, <한겨레신문>에 실린 박재동의 만화를 오려내 스크랩하며 다짐했던 결심. 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순수했던 마음에 대해.
2001년 12월11일 영화평론가 박평식은 스포츠조선에서 주관하고, 조선일보에서 후원하는 청룡영화상의 정영일 영화평론상의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글을 쓰고 비평을 하는 사람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작은 소망”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가. 나는 글을 쓰면서 혹 나의 정신을 팔지 않았을까. <목 긴 사나이>의 만화들은 나에게 명징한 눈을 요구했다. 박인하/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