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영상물로 변신한 ‘해리 포터’ 열풍이 지금 전세계를 항해 휘몰아치고 있다. 소설에서 출발하여 영화와 게임, 캐릭터상품으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원 소스 멀티 유징’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에서 쉽게 쓰이는 비유인 ‘자동차 몇 만대 수출량’에 비견되는 또 하나의 대박상품임에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알기 쉬운 이 투자대비 수익률만으로 콘텐츠를 보는 것은 학생이 수학문제를 풀 때 참고서에 나와 있는 답만 베끼겠다는 생각과 똑같다.
올해 가장 주목받았던 애니메이션인 <슈렉> 역시 성공한 콘텐츠상품답게 제작사인 ‘드림웍스’의 상업적 부와 함께 자사의 기술을 전세계에 홍보하는 등 여러 부수적인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슈렉>과 다른 점은 이 작품은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가지는 문화의 어느 특정한 요소 하나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겠지만 문화마다 타문화사람이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요소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좀더 강하게 인지될 때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영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흡혈귀=드라큘라’라는 연상작용처럼 앞으로 10여년 이상은 ‘마법사’라는 단어와 ‘해리 포터’가 거의 동등한 위치까지 점유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월레스 앤 그로밋>과 <치킨 런>의 탄생지로 플라스티신(plasticine: 세공용점토)을 주재료로 만들어지는 클레이메이션 제작기술은 세계최고로 인정받고 있으며 제작사인 아드만 또한 영국문화 발전력의 한 힘이 되는 곳이다. 이들의 작품들을 빛내주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빚어내는 캐릭터들에 대한 감정 이해와 제작에 대한 진지한 노력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점이다. 이것만 충실히 떠받쳐주는 작품이라면 뛰어난 CG기술이나 화려하게 치장된 캐릭터로 무장된 작품보다 더 큰 파워를 지닐 수가 있는 것이다.
<치킨 런>처럼 지나치게 화려해진 부분도 있지만 <아담>이나 <꼬마 렉스>와 같은 작품에서처럼 아드만의 캐릭터는 전반적으로 밋밋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1998년 10분짜리 에피소드 13편의 시리즈가 <BBC2>를 통해 방송되었고, 얼마 전 새로운 시리즈가 완성되어 현재 <BBC2>에서 방송되고 있는 <꼬마 렉스>에서 4명의 주역캐릭터들은 겉모습은 초등학교 공작시간에 뛰쳐나온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적이고 어리석지만 팀의 리더인 ‘렉스’와 숨은 실세인 ‘웬디’, 감정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폭력아 ‘봅’, 잼, 화요일, 우주학 그리고 후버 청소기를 좋아하는 ‘빈스’의 모습은 그 엽기적인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지닌 연기력 덕분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의 감정이 살아 있고 그 속에 만든 이들이 살고 있는 문화가 재미있게 녹아 있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가 발휘하는 가장 큰 이득은 금전적 효과가 아닌 그 태생지에 주는 문화적 풍요로움과 자생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문화상품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단순한 수치적 이득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100배, 1000배의 이득을 벌어들인 ‘대박’ 뒤에는 100편, 1000편의 실패작(금전적 측면에서)이 있게 마련이다. 제발 더이상 자동차나 반도체 수를 애니메이션 작품의 판단기준의 잣대로 삼지 말았음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광활한 우주나 드넓은 중원도 좋지만 아직도 한국 역사나 문화 속에서 가공할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배우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시간이 없다면 만화나 소설, 동화책을 읽어보아도 그 속에 수많은 가능성이 있음을 알 게 될 것이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