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 칭찬을 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 위 만화집이 뒤늦게 내게 전해졌다. 올해 4월에 출간되었으니 반년도 더 지난 셈인데 그 사이 4쇄까지 펴냈으니 걱정할 것 없어 다행이기는 하다. 사실 이 만화책 술턱을 일찌감치 얻어먹기는 한 셈이다. 한쪽으로 실내 낙시터가 있고 민물찌개탕이 종류별로 일품이었던 일산의 한갓진 명물음식점에서 작곡가 김민기가 후배 노래평론가 김창남의 영국 연구교수행 환송을 겸해 마련한 자리에서였다.
야, 은홍이가 상을 다 받으니(이 책은 상금 500만원짜리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다) 민주주의가 되긴 됐구나…. 김민기는 그렇게 흔쾌히 웃어주었지만 그의 운동권 만화보다야 사람 됨됨이를 훨씬 더 좋아했던 나로서는, 물론 축하할 일이되 긴가민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글쎄 만화가 얼마나 좋아졌을까….
‘됐냐? 00야----!!!!!’로 끝맺고 있는 ‘술꾼 이은홍, 자필 이력서’에는 ‘스스로를 노동운동가라 착각하고…(중략) 1989년 결혼 후에야 전문 만화가로서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쓰고 있는데, 말은 반갑지만 정말 술 냄새가 지독하다. 그런데 만화를 한장 한장 넘기니 그 지독함이 금세 그리운 뭉클함으로 변한다. 그리고 술의 뭉클함은 분명 무릎을 칠 정도로 기발하게 웃기는데도 그 웃음이 눈물에, 눈물이 희망의 중력에 가깝게 만든다.
아, 이쯤 되면, (나의) 반성이 오히려 경박하다. 그는 ‘운동권 만화’를 반성한 게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키는 방법으로 예술에 달했다. 술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육체의 비애와 정신의 희망 사이 고행을 흡사 사당패의 줄타기 놀이로 바꾸는 방법. 웃음이 가르쳐준 것은? 기로에서 방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로를 심화시키는 일. 하여, 내가 보기에 이 눈물겹게 웃기는 만화들 중 최고 걸작은 음주이력서9: 술꾼이 술꾼을 만났을 때다. 술꾼 남자와 술꾼 여자가 합심하여 ‘술과 정을 나누’다가 코뼈 함몰된 김에 책임지라며 프로포즈를 하고 빨리 끝내고 해장이나 하고 싶은 결혼식을 올린 뒤 10년,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는 냉장고 문을 연 채 ‘아빠! 우유가 또 떨어졌어’ 하는데, 탁자 위 소주 한병에 김치 쪼가리 따위 놓고 수작중인 부부가, 부창부수 아닌 이구(二口) 동성으로 내뱉는다. ‘물 마셔, 임마!’ 이 ‘기로의 걸작’ 뒤 발전이 나는 한국만화사적으로 궁금하다.(사회평론간)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