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열린책들 펴냄/ 7500원
‘아주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으로 출발하여 평범한 주인공을 이상한 비극으로 몰아가는 프랑스의 현대소설. 어느 날 남편은 10년간 고이 기른 콧수염을 깎고, 아내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에게는 콧수염이 없었다고 정색을 한다. 부부는 서로를 정신병자라고 의심하고, 남편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칠 결심을 하고 홍콩행 비행기를 타지만 여전히 악몽은 계속된다. 1986년 몽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는 <콧수염>으로 데뷔한 엠마뉘엘 카레르는 <겨울 아이> <베링 해협> 등 걸작을 양산했다. 카레르는 작품 속의 인물을 비극 아닌 비극에 빠트려 처참하게 파멸시키는 과정을 통해 허구가 현실을 능가하고, 부조리가 논리와 이성을 압도하는 광경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