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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 베스트 앨범,
2001-12-06

디스코, 순수한 쾌락

내년 결성 30주년을 앞두고 발매된 스웨덴 그룹 '아바'의 베스트 앨범이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홍보되는 물량을 보면 아직도 이들의 상업성이 시들기는커녕 대중음악 판에서 최고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다가 댄스 플로어에 가 보면, 쫘르르, 하고 별 쏟아지듯 터지는 피아노 인트로를 지닌 <Dancing Queen>은 여전히 파티의 분위기가 최고로 떠 있을 때 나오기가 십상이다. 이 노래가 나오면 어른 애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저마다 댄싱 퀸, 댄싱 킹이 된 듯 리듬에 몸을 맡긴다. 이들의 음반 중에서 예를 들어 브라이언 이노의 것들처럼 대중 음악사의 중요한 길목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음반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에 대한 보편적인 애호는 거의 모차르트의 음악을 방불케 한다. 도대체 무엇이 아바의 '영원한' 인기를 밑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순수한 쾌락'으로서의 음악이라는 개념이다. 모든 역사적 의미를 배제하고 남는, 악기의 소리들과 가사(이 때 가사는 뜻도 뜻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발음과 상투형들에 그 중요성이 집중된다)와 목소리를 당대의 대중적 지평선을 절대로 넘지 않으면서, 다시 말해 대중의 기호에 철저하게 복종하면서 정교하게 짜맞춘 일종의 퍼즐로서의 음악이라는 개념이다. 그 개념의 밑바탕에는 일찍부터 미국식 팝을 받아들여 내면화한 스웨덴의 팝 저변이 갖춘 실력이 있다.

그 '순수한 쾌락'이라는 개념은 디스코 시대, 다시 말해 70년대를 상징한다. 디스코가 드라마틱하게 상징하고 있는 의미배제의 철학은 역사적으로 보면 부정과 회의와 허무의 한 발현 양식일 텐데, 결국은 개인적 쾌락의 보다 적극적인 연장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후기 산업사회의 얼터너티브한 운동들이 스스로 의미부여하는 어떤 힘들과 만난다. 동성애, 소수집단 등의 옹호와 디스코는 그렇게 역설적으로 만나고 있는데 음악적으로 치자면 그 정점에 바로 '아바' 같은 유로 디스코 밴드가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아바를 대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런 면에서도 스칸디나비아는 참 묘한 땅덩어리라는 점이다. 스칸디나비아는 세계사의, 혹은 유럽의 역사적 책무와 묘하게 빗겨서 있으면서 사실상 지나고 나면 그것들을 유도하고 미리 암시한다. 멀리 유럽의 전설들이 그렇고 신대륙 발견도 그랬고(스칸디나비아가 훨씬 먼저 신대륙을 발견했다) 또 민주주의도 그렇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슬프다. 아름다운 퍼즐을 짜놓고도 또다시 근본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내면이 배제된 어떤 세계적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앨범은 한마디로 그런 아바의 모든 것을 두 장의 음반에 담아 보여준다. 이들을 역사적으로, 시간 순으로 ‘앤솔로지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아바의 히트곡들이 담겨 있는 돌아보면 70년대 후반은 아날로그의 정점이자 마지막 전성기였다. 디지털 기기들이 나오기 직전, 아날로그 멀티 트래킹 녹음 기술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에 녹음된 음악들은 정말 사운드가 살아있다. 디스코 시대의 ‘프로’들은 정말 프로들이다. 아바의 곡들은 너무나 정교하게 대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의 지평을 넘지 않고 있다는 건 참 최고의 곡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아바는 미국의 카펜터즈와 더불어 70년대 후반을 가장 잘 형식화하고 있는 밴드라 할 수 있다.(유니버설 발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