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남의 첫 문장은 언제나 ‘어느 날 문득’이다. 시인이었던 글쓴이가 방랑의 유혹 혹은 부랑의 순례에 빠져든 것도 다르지 않다. 그는 “내 앞에 버려진 검은색 비닐봉지가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너머’의 삶(들)이 그냥 궁금해졌고, ‘너머’의 감정(들)에 유혹을 느꼈다고 말한다. 라오스, 베트남, 아일랜드, 터키 등 10개국 23개의 풍경들에 관한 짧은 여행일기 형식의 책은, 정보욕에 사로잡힌 ‘무박 3일’ 도깨비 여행객에겐 무용하다. 근사한 풍광을 담은 사진에세이를 기대했던 이들에겐 시시한 잡담 메모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직 ‘그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발바닥에 언제나 땀띠 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일상의 그물에서 어서 도망가고 싶은 욕구로 충만한 이들 말이다. 그들이라면 능히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시간의 이동을 극명하게 경험케 해주는” 야간열차의 궤적, 난감한 백지 오선지 위에 외로움의 음표들을 분명히 새겨넣을 수 있는 맨디 무어의 마술, “지나간다, 나쁜 일은 다 지나간다”고 읊조리며 활을 키던 현인의 위안,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는다”는 루안프라방의 기적을 말이다. “우리는 왜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이 둘은 모두 5%의 알코올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는 무뎌진 오감을 일깨워준 저 ‘너머’를 향해, 우리를 대신해 항상 5% 알코올에 취해 있는 글쓴이가 부친 감사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