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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년의 심오한 유머
2001-11-08

임옥상의 <팔루스> 연작

아호가 ‘한바람’이라 그런지 임옥상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니, 아무리 그를 좋아한단들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내가 망하는 첩경이다. 오만 가지 일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벌리고 뜻있는 모임을 만들어내고 그 와중으로써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틈틈이 개인전도 하는데 그 많은 운동과 작업을 하면서도, 내가 왕년(이라기는 나보다 나이 많은 그분께 좀 죄송하지만)에 그랬던 것과 달리 작품이 상투화하기는커녕 현장과 생짜로 부딪치는 육체의 팽팽한 근육이 어느새 저항정신과 해학, 그리고 조형미를 원숙하게 조화시킨 당대의 명품으로 전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손품뿐 아니라 아예 발품도 넓혔는지 휴전선에 무슨 국제기념물을 세우더니 곧장 부산에서 개인전(코리아아트 갤러리 2001.7.30∼8.8)을 열었는데,나는 당연히 두곳 다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내처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서 습지 환경 보존을 위한 ‘목 긴 청개구리전’을 목하 주도하고 있는 바, 거기도 나는 못 갈 것이다. 어쨌거나 부산 전시회 팸플릿을 뒤늦게 받아드니 내가 이미 보았던 작품들이 있다. 다름 아닌, 팔루스 연작들. 쇠를 갖고 작업하는 게 참 신기해. 물론 흙과 다르고…. 약 1년 전, 매향리 기념 조형물 ‘자유의 신 in Korea’를 한참 용접(?)중일 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모처럼 순수한 창작 작업의 즐거움을 어린애처럼 표출하는 것에 모종의 안도와 함께 강한 설득력을 느꼈었다.

이 작품들은 ‘자유의…’를 만들다 남은 전쟁 관련 고철 조각들로 만든 것이다. 남근은 예외없이 무지막지한, 그러나 녹슨 탄두(彈頭). 속편들인가? 미국의 고철 조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만의 참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그런 면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절묘한 ‘남음의 여백’이다. 남근조각상의 역사는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래 10만년이 넘는다. 임옥상의 팔루스들은 인간 형체를 이루는 조각(piece)과 조각(sculpture) 사이 야릇한 공간으로 그 선사의 세월을 머금는다. 그리고 그 세월의 무게가 심오한 우스꽝스러움을 유발하면서 ‘반미’(反美)가 자칫 뜻할 수 있는 소재- 주제주의를 문명비판의 차원으로, 그리고 인간 실존의 부파(Buffa) 미학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토속성과 모더니티를 얼버무렸던 피카소와 사뭇 다른 방식이고, 좀더 실천적이면서 미학적인 방식이다. 미니어처(miniature)로 대량생산하면 역사의식과 심미안을 동시에 드높이면서 떼돈 벌겠다. 아, 정말 기묘한 15만년의 응축들이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