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별 상관없는 공식이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록밴드는 대체로 지역에서 활동하다 인디 레이블을 거쳐 메이저 레이블에 이르는 과정을 밟은 경우가 많다. 이번에 새 음반을 내놓은 미국 얼터너티브밴드 케이크(Cake)도 그런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국내에는 한때 2집 <Fashion Nugget>에 수록된 <I Will Survive>의 독창적인 리메이크로 클럽가에서 인기를 누렸던 케이크는 1991년 결성된 5인조 밴드. 로컬 인디밴드로 활동하다 인디 레이블을 거쳐 지금은 100만장 내외의 판매고를 올리는 메이저밴드의 위치에 올랐다.
그렇지만 케이크는 겨우 2년에 음반 한장을 만들 뿐이고, 앨범 홍보 투어를 제외하고는 공연을 자주 하지도 않는다. 게으르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음악은 어떤가. 미끈하거나 거친 주류 일반의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복고적인 질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밴드 이름은 반어적으로 작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실 이들의 음악은 아이러니란 개념을 동원해 평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3년여 만에 내놓은 4집 <Comfort Eagle>은 케이크가 그동안 선보인 음악을 좀더 정제해서 직조해놓았다. 우선 귀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심드렁한 투에 중저음으로 일관하는 비음 섞인 보컬이다. 코러스 부분의 그 흔한 비약도 없어서 따분하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음악 요소들도 뜯어보면 ‘구닥다리’가 많다. 포크, 컨트리, 재즈, 하드록 등을 연주했던 전력의 소유자들답다.
그렇지만 가사 쓰는 솜씨와 음악을 뒤섞는 재주가 뛰어나서, 무심한 보컬과 구린 음악 요소의 화학적 결합물은 매력적이다. 더러는 흥겨움을 더러는 아련함을 전염시키는 트럼펫, 펑키한 리듬과 그루브를 구사하는 베이스와 드럼, 오밀조밀하게 반복되는 기타가 어우러진 분위기는 묘하다. 그게 그거 같지만 곡마다 뉘앙스를 달리하는 보컬 또한 보기와 달리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신랄한 풍자와 조롱이 만연한 말 재담(wordplay)으로 뒤틀린 가사는 익살스럽거나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가사 내의 길항 관계, 가사와 악곡의 부조리가 발산하는 반어적 효과가 두드러진다. 앞서 아이러니를 들먹인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타이틀 곡 <Comfort Eagle>은 예전에 라틴음악을 쓰던 수법과 유사하게 아시아풍의 물감을 팔레트에 섞어본 경우다. <Short Skirt/ Long Jacket>은 로보틱한 질감으로 마감 처리된 댄스곡이고, <Commissioning A Symphony In C>는 타이트하게 점층적으로 전개되는 곡이다. 몇곡에서 드럼 프로그래밍이 쓰였고, 즉흥성과 인상적인 순간이 줄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이 앨범은 각종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다. 길거리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코멘트를 편집한 <Short Skirt/ Long Jacket7> 뮤직비디오도 인기가 높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도 재밌다. 그 뮤직비디오의 컨셉과 제작비는 모두 보컬 존 매크레(John McCrea)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는 케이크가 메이저밴드지만 인디밴드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앨범이 라이선스로 발매된다. 직배사에서 외국음반은 라이선스 대신 수입 판매를 하는 게 대세인 걸 감안하면 의외다. 혹시 모 사이다 광고에 이들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는 것과 관련있을지도 모르겠다. 케이크는 미국에서 틈새시장을 돌파했는데,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아참, 조금 전에 라이선스 발매 소식에 놀랐었지.
이용우/ 대중음악평론가 djpin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