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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 부릅뜬 러시아의 혼
2001-09-20

다니엘 샤프란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짧은 상념이지만, 1950년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의 전체 6곡 가운데 2번, 5번만 잠깐 녹음했을 뿐, 데뷔 이후 무려 60여년이 흐른 뒤에야 전곡 녹음을 한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장강대하의 굽이굽이를 다음처럼 표현했다. “1번은 가벼움, 2번은 슬픔과 열정, 3번은 빛, 4번은 위엄과 모호함, 5번은 어둠, 6번은 햇빛” 그렇다면 5번만으로 얘기를 해보자.

파블로 카잘스(EMI)의 5번은 산맥을 휘감아도는 거친 안개를 연상시킨다. 보잉은 거침없고 걸음 또한 뚜벅뚜벅, 확실하게 밀어붙인다. 이를 교본으로 한다면 폴 토르틀리에(EMI)는 위대한 스승의 길을 유명한 ‘토르틀리에 피크’, 즉 굽은 엔드핀을 사용하여 높은 포지션의 왼손에 자유를 주고 오른손의 활로 거침없이 긁어대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만약 음표 사이의 골을 정확히 짚어내며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치닫는 것만으로 어떤 우열을 가늠해도 된다면 사실은 야노스 슈타커(머큐리)가 0순위. 오랫동안 그의 녹음은 카잘스의 반대편에 위치할 만한 유일본이었다. 유려한 낭만파 피에르 푸르니에(그라모폰)와 스미소니언협회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다리 사이에 낀 정격파 안너 빌스마(소니)가 아니었다면 슈타커의 독보성은 상당했을 터이다.

그러나 이상은 다니엘 샤프란(예당)이란 존재를 망각함으로써만 가능한 얘기다. 낡은 표현대로, 그는 정말 늦게 왔다. 2차대전 이후 로스트로포비치와 각종 콩쿠르에서 1, 2위를 주고받으며 천재성을 떨쳤으나 서방으로 망명하여 높은 음악성, 대중적 활동을 선보인 라이벌에 비하여 다니엘 샤프란은 줄곧 레닌그라드의 둔탁한 대지의 시인으로 남았다. 베토벤과 프로코피에프의 첼로 소나타 녹음으로도 유명하지만 역시 그 또한 첼리스트로서 바흐의 이 대곡에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연유로 어디에서 녹음했다는 기록조차 없이 다만 ‘구소련 보관소의 음원,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라고 국내 출시된 이 음반은 1970년, 그러니까 샤프란의 최고 황금시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으므로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어떤 보관소의 음원인지도 모르고 1번, 6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음반이지만, 그러나 로스트로포비치가 ‘어둠’이라고 표현한 제5번에 있어 과연 두 눈 부릅뜬 러시아의 혼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도무지 거역할 수가 없다.

정윤수/ 대중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