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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루브, 흰 제자들
2001-09-13

자미로콰이 신보 <A Funk Odysse>

영국의 백인들은 틀림없이 미국의 흑인음악을 미국의 백인들보다 더 잘 받아들인 것 같아 보인다. 미국의 백인들이 감탄과 경멸감이 섞인 방식으로 흑인음악을 받아들이고 모방했다면, 영국의 백인들은 약간은 숭배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60년대 모드족 가운데에는 제임스 브라운을 실제로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숭배는 기본적으로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의 허탈감이 블루스에 이입되는 방식으로 행해졌으며, 그 이입에 따라 흑인음악은 새로운 가치와 스타일을 부여받게 된다. 그 전통이 깊어서 그런지 이른바 ‘애시드 재즈’ 같은 최근의 장르를 통해서도 영국식의 ‘이입법’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그 방식은 늘 흑인음악을 ‘내 것’이라고 거짓말하는 미국사람들과는 달리, 흑인음악에 ‘힘을 더 실어주는’ 방식이다. 그 숭배/거리두기와 이입의 변증법이 영국에서 벌어지는 흑인음악 실험이 미국 본토에서보다 역동적인 무엇이 되도록 한다.

이번에 새 앨범 <A Funk Odyssey>을 낸 자미로콰이 역시 톡 까놓고 ‘우리는 흑인음악의 제자’라고 노래하는 밴드이다. 그들은 펑키한 그루브를 생명으로 여기는 밴드이다. 약간의 편차는 있으나 브랜드 뉴 헤비스, 제임스 테일러 콰르텟, 그리고 스테레오 엠시스 등과 더불어 영국 애시드 재즈계를 이끌어가는 대표주자의 하나이다. 물론 자미로콰이의 그루브가 더 쉽고 더 멜로디컬하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이다.

1992년에 결성된 그들은 리듬으로 볼 때는 디스코 →하우스로 이어지는 댄스 플로어 그루브의 아이들이다. 그리고 곡을 구성하는 방식이나 전체적인 톤으로 볼 때는 올드 스쿨 흑인 솔의 아이들이다. 사실상 디스코 하우스가 올드 스쿨 펑키 사운드의 후예라고 한다면, 전체적으로는 정통 흑인 댄스음악의 충실한 아이들이다.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여전히 이들이 흑인적인 그루브의 생동감에 바탕을 두고 음악을 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디 가겠나. 그러나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좀더 일렉트로니카적인 조미료들을 많이 치고 있다는 점이다.디스코 하우스의 제자들은 늘 흑인적인 그루브와 일렉트로니카적인 효과에 양다리 걸칠 수 있다. 때에 따라 어느 쪽으로 많이 나가느냐가 문제긴 하지만, 그 둘이 이 계통 밴드에는 모두 가능한 수순이다.

자미로콰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보컬인 제이슨 케이의 역동적인 멜로디라인이다. 그루브를 타는 간략함을 유지하면서도 그 멜로디들은 귀에 꽂히는 측면이 있었다. 그의 멜로디 감각과 독특한 톤의 목소리가 자미로콰이를 가장 대중적인 애시드 재즈 밴드로 만든 주요인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 그 멜로디가 그리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는 게 조금 아쉽다. 사실 그런 멜로디들은 단순화되고 정형화되기 시작하면 이 노래에서 저 노래로 구분이 안 되기 십상이다. 대안은? 모르겠다. 마빈 게이의 무덤에 가서 기도드리면 혹시 답이 나올지도.

어쨌든 자미로콰이 같은 밴드의 존재는 영국 90년대의 ‘얼터너티브’가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폭이 넓었음을 잘 알게 해준다. 미국의 90년대 록이 의미의 무게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뭔가에 약간은 짓눌려 록 순수주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 영국의 90년대는 록과 일렉트로니카, 하우스, 흑인음악적 그루브 등이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교차하면서 훨씬 스스로를 풍부하게 했다는 점이다. 자미로콰이의 성공이 그러한 교차들 속에서 싹텄음은 분명한 일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