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촌에 있는 한 대형 음반매장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의 보컬인 ‘불대가리’ 이성우의 전신 브로마이드가 씩 웃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반기고 있는 게 아닌가. 알 만한 사람들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지난 7월 말 일본에서 개최된 후지 록페스티벌에 참가한 노브레인이 공연 도중 일본의 대동아기를 이빨로 물어 찢었던 것이 회자되자 약삭빠른 음반사가 이를 홍보전략으로 이용한 것이리라.
사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게, 그 음반매장은 미국에 본사를 둔 거대기업의 국내 지점이었다. 하지만 노브레인이 누군가. 90년대 중반부터 홍익대 앞을 휘젓고 다니며 펑크 록이라는 ‘생양아치들의 음악’(?)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데 이바지했던 ‘인디 1세대’ 밴드가 아니던가. 이 인디음악의 아이콘이 음반업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매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풍경을 보니, 돈과 산업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놈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허무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거나 잊을 만하면 사람들 뇌리에 자신들의 이미지를 또다시 꽂아넣는 노브레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난데없이 섹스 피스톨스의 음반 수록곡들을 한곡도 빠짐없이 커버한 <Never Mind Sex Pistols, Here’s The NoBrain>을 발매하는가 하면, 팬들의 성원에 보답한다며 입장료 100원짜리 벼락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번에도 ‘대동아기 사건’으로 세상의 눈길을 자신들에게로 돌려놓았고, 그로 인해 두 번째 정규음반 <Viva NoBrain>이 발매된 지 한달이 넘어간 지금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고 노브레인을 ‘떠버리 이슈메이커’로만 판단한다면 큰 오산. <Viva NoBrain>은 올 여름 가장 주목할 만한 국내 록음반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완성도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펑크 록 특유의 과격함과 경쾌함이 적절히 섞여 있어 가슴 뜨겁게 들을 수 있다. 트랙 하나하나를 세심히 감상하다보면 ‘시종일관 조져대는 줄로만 알았던 펑크의 제맛은 그 미묘한 차이를 찾아 듣는 것’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속시원한 펑크 기타가 여전히 음반 전면에 부각되어 있으며, 이성우의 목이 찢어지는 듯한 보컬과 황현성의 거침없는 드러밍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푸석푸석한 사운드 질감은 마치 클럽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 같은 날것 그대로다. 전작들에 비해 이성우와 황현성의 작곡 비중이 늘어난 점이 눈에 띄는데, 특히 황현성이 만든 <이제 나는> <사람은> <살고 싶소> 등은 재치있는 가사와 다양한 리듬패턴이 돋보여 밴드 내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하던 그의 음악적 성장을 엿보게 해준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태양은 머리 위에> 등은 신나게 두들겨대는 전형적인 펑크 넘버들이며, 안티 서태지 운동 이후 인터넷을 통해 쏟아진 비난에 회의를 느껴 만들었다는 <거세>는 분노가 꿈틀거린다. <해변으로 가요> <암중모색> 등은 70∼80년대 그룹사운드풍이 도입돼 산뜻함을 더하며, 타악기 연주자 정정배가 참여한 곡 <사람은>에서는 보사노바 리듬까지 소화해내고 있다. 재기발랄하고 즐거운 음반임에는 틀림없지만, 노래말을 보면 이 땅을 살아가는 마음이 ‘편치 않은’ 젊은이들의 속내를 대변하고 있어 마냥 신나지만은 않다. 남들과 똑같이 살기를 원치 않는 펑크 로커들의 바람이 배어 있어 자못 숙연해질 여지마저 준다. 비록 마니아와 평론가 모두를 사로잡았던 <청년폭도맹진가>만큼 듣는 이를 단번에 휘어잡는 사운드는 아닐지라도, 이 음반으로 노브레인이 ‘인디계의 슈퍼스타’ 자리를 더욱 견고히 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진백/ 도시생활정보사이트 줌시티(zoomcity.com) 음악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