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의 만화가 나왔다. 자비출판의 전설적인 빨간책 <빨간 스타킹의 반란>, (솔직히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던) <동아일보>에 1년이나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판된 <도날드닭> 이후 세 번째 단행본이다. <우일우화>(宇逸寓話)라는 제목이나 ‘이우일의 만화상자’라는 부제가 잘 어울리는 책이다. 마치 만화상자처럼 <우일우화>에는 <필름 2.0>에 연재한 영화에 대한 만화, <딴지일보>에 연재한 만화, 쌈지의 캐릭터 딸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만화, 밴드인 퍼니 파우더를 위한 기획만화, 청소년의 여러 문제를 상담해준 골박사의 청춘상담에 이르기까지 이우일이 작업한 여러 만화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책의 장정이나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189cm의 시원한 키를 자랑하는 작가의 명랑한 사진이나 스티커, 엽서, 책갈피가 한꺼번에 제공되는 파격적인 편집, 이우일의 홍익대 후배인 ‘꽃피는봄이오면’의 디자인도 다른 책과 닮지 않은 개성을 자랑한다. 직선적으로 말하면, 만화를 좋아하거나 딸기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거나 <딴지일보>에 연재한 존나깨군을 재미있게 본 사람, 잘 만든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우일우화>를 서점에서 구매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직설법으로, 있는 그대로
이우일의 만화를 특별히 어떤 만화라고 부르긴 힘들다. 다만 주절주절 여러 이야기를 한 만화나 말도 안 되는 공상을 정리한 만화나 나름대로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나 아니면 청소년상담만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화들은 한결같이 이우일스럽다. 쓱쓱 그려대는 것처럼 보이는(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이우일의 캐릭터와 색깔을 바꿔가며 칸을 채우는 컬러링, 똑같은 네모칸으로 일관하는 칸 분할 등 형식적으로도 분명 이우일다움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핵심은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선적인 이우일 만화의 스타일이다.
이우일의 만화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직선으로 말한다. 은유나 환유도 찾아볼 수 없다. 애써 있어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깨는’ 만화가 이우일이 생각하는 바로 그만큼의 이야기만을 보여준다. 영화에 대한 만화에서는 할리우드 남자배우와 여자배우에 대해 그리거나 보고 싶은 만화를 나열하거나 악당을 모아보거나 유명한 캐릭터를 정리하고, 이우일이 보고나서 웃겼던 영화를 소개하는 등 자신의 생각을 있어보이게 포장하지 않고 칸 속에 펼쳐놓는다. 생각을 펼치는 방법도 직선적이다. <광수생각> 이후 유행한 서점용 만화책에 빠지지 않는 코너가 작가가 직접 쓴 짤막한 글들이다. 만화 옆에 한 페이지로 글을 써놓는다. 그러나 <우일우화>에는 이우일의 글이 많지 않다. 만화는 만화로 끝이다. 이미 만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기 때문에 구태여 글로 보충하지 않는다.
이우일의 만화가 주는 매력은 삐딱한 상상력의 교감에서 시작한다. 말도 안 되는 공상,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지만 그 삐딱한 상상력은 만화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과 공감을 형성하는 교감의 상상력이다. 어린 시절 비밀창고를 갖기 위한 처절한 노력에서부터 아는 것도 많은 택시기사와 복부인이 보낸 삼선의원이라는 괴물, 언더댄스테크노록힙합RNB를 하는 3인조 댄스그룹까지. 신문이나 TV를 보다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방에서 뒹굴다가 문뜩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이우일의 만화에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구박받는 생각, 어린 시절 모았던 딱지나 구슬, 미니카와 같은 그런 생각들이 <우일우화>에는 가득하다. 모두 잊어버린 것만 같았던 유쾌하고 불온하며 삐딱한 상상력을 보면서 우리는 반항의 에너지를 얻는다.
놀면서 살아보자고요
이쯤에서 책의 제목인 <우일우화>가 떠오른다. 집 우(宇)자에 달아날 일(逸)이 합쳐진 ‘우일’(宇逸)이라는 단어는 작가 이우일과 정말 어울리는 단어다. 이우일은 <우일우화>에서 고무인형 같은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하거나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된 직업”을 가져 “진짜로 이상적”이라며 “당신, 놀면서 돈 벌 수 있어? 카하하”라고 호기있게 웃기까지 한다. 그것뿐인가? 303일 동안이나 신혼여행을 갔다오기도 했다. 한문으로 크게 쓰여진 책제목을 풀어보면, 집에서 달아나 쓴 우화라고 풀어볼 수 있는데, 정말 책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외계인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에 살고 있을 것이다. 괴물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슈퍼 히어로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과업을 지시하는 박사님도 있을 것이고. 분명 있을 것이다. 삶이란 게 그런 거다. 패배적으로 들릴 수 있어도, ‘어차피’ 깨는 세상이다. 깨는 세상을 충격받지 않고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는 것이다. 이우일과 <우일우화>는 놀면서 살라고 이야기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