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헤비 메탈의 ‘인간문화재’라 할 수 있는 노장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가 새 앨범을 냈다. <Demolition>. 아마 이들의 이름 자체로 감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메탈팬들에게 주다스 프리스트의 이름은 강력한 헤비 메탈 전성기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금속성의 보컬과 강력한 드라이브감을 동반하는 리듬 기타가 이들의 핵심인데, 이번 앨범에서도 어느 정도는 그 ‘강력했던 한때’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케이케이 다우닝과 글랜 팁톤이라는 두 기타리스트의 이름은 보컬리스트 롭 헬포드와 함께 주다스 프리스트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인데, 롭 헬포드는 빠져 있지만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트윈 리드 기타리스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팬들에게는 감동의 한 포인트리라.
그러나 실제로 노래들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리프나 멜로디가 그저 평범하다. 물론 기타 사운드는 이들에게 여전히 실험의 영역에 속한다. 피치 시프터를 비롯한 여러 디지털 효과기를 통해 충분히 실험성 있는 메탈 사운드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앨범을 ‘실험작’으로 치기는 좀 무리가 있다. 이 노장들은 자신들이 닦아놓은 메탈의 길을 열심히 섭렵하고 있지만 그건 일종의 되돌아보기이다.
우리나라에서 60년대 중반∼197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밴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주다스 프리스트의 <Breaking the Law>라는 노래를 한번쯤은 커버해 보았을 것이다. 단순한 리프와 거의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곡 구성을 가진 이 노래는 헤비 메탈의 사운드와 어법을 처음 접한 친구들이 그 입문격으로 시도해보기에 안성맞춤인 노래였다. 한때 거의 국민가요처럼 여기저기서 들리던 <Before the Dawn>. 헤비 메탈 발라드는 이 장르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때로 그 사운드는 가장 강력한 쓰레기더미가 굴러가는 걸 연상시키지만 어떤 때는 ‘가요’이다. 좋게 보면 순정이 있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British Steel> 이후 약 5년 정도가 주다스 프리스트의 전성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Point of Entry> <Screaming for Vengence> 같은 앨범들은 지금 들어도 그 사운드가 참신하다. 그 참신함은 헤비 메탈의 영역을 넘어서 록장르 일반에 제시된 새로운 파워를 의미한다. 그 ‘새로운 파워’는 후일 스래시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래시가 등장하고서, 주다스 프리스트는 역사 속으로 일단 사라졌다. 어느 앨범에서는 스래시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건 흉내내기였다.
그러나 헤비 메탈 밴드들은, 주다스 프리스트를 포함하여, 생각보다 장수하는 편이라고나 할까. 확실히 그렇다. 그 비결을 어디서 찾을까? 일단은 음악에 대한 탄탄한 열정이 헤비 메탈 뮤지션들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주다스 프리스트만 해도 그렇다. 이 밴드의 지주인 트윈 리드 기타리스트들은 오랜 세월 기타와 앰프를 만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스위치를 조작하며 추구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들은 전문가들이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운드를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트랙인 <One and One>을 비롯, 빈틈없이 사운드를 구성하고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려는 혼신의 노력이 보인다. 그러한 모색 자체가 새로운 앨범으로 이어지고 있고, 듣는 이의 귀에 들린다. 음악 자체는 좀 ‘구리다’는 평을 면할 길이 없겠지만, 사운드를 뽑아내는 방법은 여전히 록을 듣는 이들에게 참고가 된다. 하드 록 사운드를 구사하던 <Rocka Rolla>가 나온 게 1974년이니 얼마나 오랫동안 훈련된 사운드냐.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