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만큼 쓰임새가 많은 직업도 없는 것 같다. 좋은 책(대본)을 늘 가까이, 그것도 통째로 외우니 독서량이 풍부하며, 좋은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아니 대화가 되며, 끼가 있으니 술자리가 즐거우며, 의상과 분장까지 직접 해결하니 재주가 있다. 여기에 글재주까지 있다면 그건 참 불공평하다. 벌써 게임 끝이다. 오지혜 얘기다. <한겨레21>에 그미(그녀의 멋스런 표현)의 인터뷰가 나올 때마다 허겁지겁 읽던 기억이 난다.
좋은 인터뷰에는 이런 전제가 따라야 할 것 같다. 사람의 목적지는 사람이라는. 그래서 인터뷰는 까다롭다. 글만 잘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통찰력도 있어야 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 자리를 끌고 가는 재치, 무엇보다 그 사람의 역사를 채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마지막 게 안 돼 인터뷰어는 늘 긴장과 복통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배우 인터뷰에 관해서라면, 배우의 역사를 두루 꿰고 있는 오지혜와는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 네이버 검색조차도 오지혜를 따라갈 수 없다. 가령 ‘성지루는 어떤 배우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동어반복의 웹문서만 주르르 뜰 것이다. 오지혜는 interview를 inner-view로 만든다. 성지루가 형의 억울한 교통사고를 해결하고 그 덕에 보험맨이 되어 ‘싸가지 캡’으로 고객을 관리한 과거에서 그의 집요함을 읽어낸다든지. 류승범의 데뷔 시절, 은행을 털어서라도 불로초를 사먹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진지한 배우의 미래를 거두어 올린다든지. 또는 연극 연출가 이상우에게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건 뭐냐고 묻고는, 이상우, 문성근, 이창동이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우린 편안하면 불편해, 그치?” 그러면서 킬킬대는 웃음소리를 듣고는 독자에게 답으로 들려준다든지.
상대방을 세심하게 뜯어 읽는 묘사력도 부럽다. 명계남이 낄낄대는 웃음은 ‘얼굴이 금방 하회탈처럼 구겨지며’ 나온 것이고, 윤여정의 핀잔은 ‘그 우수리없이 딱 떨어지는’ 것이며 시나리오를 쓰던 무렵의 방은진은 ‘마치 100년 동안 글만 써온 사람’처럼 퀭하다. 눈썰미, 사람에 대한 열정, 글에서 묻어나는 뜨거움이 오지혜 글을 읽는 즐거움이다.
즐거움 못지않게 불편함도 수두룩하다. 가수, 배우, 연출가 같은 ‘딴따라’들을 만나는 데 있어 자기 좋은 대로만 한다. 호오가 뚜렷하고 정치관도 뚜렷해서 오지혜의 화끈한 매력이 되레 편협함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오지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미지근한 애정보다는 편견에 찬 애정이 진짜에 더 가깝고, 감동은 그런 데서 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네이버 검색에도 안 나오는, 사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그미의 발걸음이 더 이어지길 바란다. 그미의 아름다운 편견을 계속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