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벨트란 밴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인가, 2040년대경 활약했던 괜찮은 밴드인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면, 지금부터 어떤 음악을 이야기할지도 감잡았을 것이다. 서기 2072년의 우주, 나라와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국적불명의 미래를 유랑하는 현상금 사냥꾼들의 사운드트랙. 바로 <Cowboy Bebop> 시리즈다. 국내 애니메이션전문채널 투니버스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카우보이 비밥>은 98년부터 선라이즈에서 제작한 26부작 TV애니메이션. 넓디넓은 우주시대, 경찰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어려운 무법천지에서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들을 쫓는 미래 ‘카우보이’들의 이야기다. ‘카우보이’라 불리는 이들 현상금 사냥꾼 중에서도 이름난 스파이크, 전직 ISSP요원이었던 제트, 그리고 쾌활하고 당찬 카우걸 페이. 어쩌다 우주선 비밥호에 모여든 3명은 제각각 과거의 그림자를 진 인물들이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그저 우주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범죄자들을 쫓으며 살아간다.
‘비밥’이란 제목처럼 이들의 일상을 감싸는 음악은 재즈. 어쩌다 지치고 고단한 표정 위로 우울한 그늘이 드려지면 블루지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아무래도 <카우보이 비밥>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곡은 역시 “빠밤빠밤빠바바밤∼”하고 오프닝을 경쾌하게 장식하는 <Tank!>. 즉흥적이고 음색이 강한 비밥 스타일과 60∼70년대 미국 범죄수사물 TV시리즈의 타이틀을 패러디한 듯한 곡으로 한번 들으면 여간해선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강하진 않지만 빅밴드 스타일의 변주인 <Rush>도 속도감 있는 재즈곡. 개인적으로는 제트가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다친 채 결국 자신의 조직을 등지게 되는 <블랙독> 에피소드에서 묵직하게 가슴으로 흘러드는 <Cosmos>의 무거운 트럼펫 음색이나 어쿠스틱 기타의 당김음 때문에 석양이 지는 서부영화의 사막을 연상케 하는 <Digging My Potato> 같은 블루지한 곡이 오래 남는다. 역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소리가 쓸쓸한 낭만을 풍기는 <Waltz For Zizi>도, 구성진 하모니카 소리도, 다 귀에 감겨오는 선율이다.
재즈와 블루스 취향이 아니라면, 스파이크가 비셔스와 성당에서 만나 혈투를 벌이는 에피소드에 흐르는 J-팝 스타일의 <Rain>도 한 음반에서 즐길 수 있다. 음반 1장에서도 변화무쌍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간노 요코의 솜씨 때문이다. 역시 성당신에 흐르는 <Green Bird>는 소녀적인 미성으로 청아하게 부르는 성가풍이고, 샹송 여가수의 노래와 테크노를 섞은 듯한 <Fantasie Sign>, 심지어 건조한 고음으로 부르는 하드록 <Live In Baghdad>까지, <카우보이 비밥>의 음악에는 경계가 없다. 비밥 재즈의 자유로운 리듬과 음표처럼. 온갖 대중음악 장르와 민속음악까지 소화해 색다른 퓨전을 시도하는 간노 요코의 음악어법은, 국적과 장르를 넘어서 있다. <마크로스 플러스>로 이미 호흡을 맞췄던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역동적인 스페이스 액션과 외로운 사냥꾼들의 내면을 풍부한 사운드트랙으로 번안해낸다.
따라서 일일이 극중 장면을 떠올리지 않아도, 아니 애니메이션을 아예 안 봤다고 해도 음악을 즐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꼼꼼히 봤다고 해도 다 기억하기 힘들 만큼 음악이 많이 쓰이고, 그보다 더 많은 곡이 O.S.T로 나왔으니까. 일본에서는 모두 5장으로 발매됐지만, <카우보이 비밥> O.S.T 시리즈 중 국내에 발매된 것은 <Cowboy Bebop> <Cowboy Bebop No Disc>. 그리고 <…Music For Freelance> 3장이다. 가장 후자는 리믹스음반이라 원곡의 맛은 느끼기 어려울 듯. 덧붙이자면 갑자기 이 시리즈를 떠올리게 된 건, 최근 도쿄에서 시트벨트가 콘서트를 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물론 2040년대의 그 밴드가 아니라 그 모델이 됐을 간노 요코와 그녀의 뮤지션들이.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개봉을 앞둔 때에 실제의 시트벨트들은 새로운 또 하나의 우주 음악을 막 마쳤다는 후문이다.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