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센트> 다구치 란디 지음/ 한숲출판사 펴냄/ 8천원
<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창해 펴냄/ 8천원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잔소리와 간섭, 때로는 폭력을 받아가며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을 하지 않고, 또는 세계와 단절한 채 자신만의 OS로 살아가는 일은 예정된 가시밭길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인간들도 있다.
최근 출간된 두편의 일본소설은, 현대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한 남자의 죽음을 신비주의와 미스터리를 이용하여 풀어가는 다구치 란디의 장편소설 <콘센트>와 성공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단면을 그린 야마모토 후미오의 단편집 <플라나리아>는 스타일이나 은유법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내부에는 ‘다른’ 것을 꿈꾸는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야릇한 연결통로가 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굽이진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의 아우라가 있다.
<콘센트>는 금융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유키가 오빠의 죽음을 알게 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회부적응자였던 오빠는 낡은 아파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 심부전증으로 죽었다. 죽음의 의미를 찾던 유키는 ‘콘센트’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세상과 연결된 콘센트를 빼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 사람들. 그들은 감수성이 뛰어나 오히려 세상에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 ‘마음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세계와 단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인과는 다른 콘센트로 세상과 연결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는 불량, 혹은 고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을 끊어버리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트랜스 상태가 되면, 그것이야말로 세계와 감응하고 자아를 찾는 과정이 된다. <콘센트>는 유키가 자신의 콘센트를 빼고 새로운 자각에 도달하는 과정을 자연과 샤머니즘, 정신의학, PC와 현대사회 등의 다양한 소재를 경유하면서 그려낸다.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다구치 란디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다소 거칠지만,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플라나리아>는 작은 이야기들을 ‘자유자재의 정신’으로 치밀하게 잡아낸다. 표제작인 ‘플라나리아’에는 스물네살에 유방암에 걸려 한쪽 가슴을 드러낸 뒤 삐걱대는 여자가 나온다. ‘병든 자는 탈락되는 현대사회’에서 그녀는 직장도 그만두고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계곡이나 맑은 시냇물에 살며 재생능력이 뛰어난 몸길이 2, 3cm의 편형동물 플라나리아를 꿈꾼다. 스산할 것 같은 내용이지만, 야마모토 후미오는 ‘재미’있게 낙오자의 일상을 묘사한다. ‘네이키드’는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낙오자가 된 여인이, ‘사랑있는 내일’에서도 부인에게 이혼당한 뒤 물흐르듯 사는 남자가 나온다. 그들은 ‘성공’에서 멀어지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들은 크게 멋있지도 않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연애소설을 쓸 때에도 단지 ‘싫지는 않았다’란 이유로 남자를 받아들이는 여자들을 그려냈다. 지금도 그렇다. 야마모토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향상의지가 없고, 세상의 흐름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일본소설의 한 전통인 ‘어째서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란 주제를 되살리고 있다는 <플라나리아>는,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상쾌해진다. 포기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플라나리아>는 날선 현실을, 따뜻하게 풀어낸다.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현대사회의 주인이자 노예인 대중과의 접점을 예리하게 느끼고 있다. 다구치 란디는 고정독자 7만5천명에게 메일 매거진을 보내는 넷칼럼니스트로 인터넷의 여왕이라 불리고 있다. 첫 장편인 <콘센트>는 지난해 출간되어 사회적인 반향까지 일으켰다. <플라나리아>로 124회 나오키상을 받은 미야모토 후미오는 이른바 ‘연애소설’을 쓰던 작가다. 성적인 환상과 로맨스를 과장한 대중소설을 쓰던 미야모토는 본격문학으로 넘어와서도, 쉽고도 예리한 심리묘사와 능수능란한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다구치 란디와 미야모토 후미오는 모두 독자의 반응을 정면에서 받아들이며 성장해온 작가다. 그런저런 이유로 일본소설들은 여전히 흥미롭고 풍요롭다.
김봉석 기자 lotu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