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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2001-08-23

해외 만화애니/ 단편애니와 광고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갔을 때 그곳에 참가한 다른 외국의 단편애니메이션 작가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도 꽤 잘산다고 생각된 나라에서 온 작가들조차 일본의 물가가 엄청나다고 혀를 내둘렀다. 택시 한번 올라타면 기본이 2천, 3천엔, 호텔방에 둘이 묵어도 하룻밤에 10만원씩은 훌쩍 날아간다. 세차장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제작비를 조달하는 처지들이라 기본경비가 제공되는 초청을 받아왔지만 영화제 참가가 꽤 부담이 된다고 했다.

기기가 발전해 제작단가가 아무리 떨어졌다 해도, 웬만한 예술 창작활동이 그렇듯이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어디나 매한가지이다. 위처럼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편애니메이션 작가들은 대체로 기획이나 일러스트, 캐릭터 디자인 등 애니메이션에 인접한 상업영역에서 품을 팔아 제작비를 댄다. 그중에서 자신의 작품색을 유지한 채 작업 노하우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작업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광고물 제작’이다.

‘광고’는 1분 남짓한 시간 안에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 특정 주제를 인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단편애니메이션’과 유사성이 많은 장르다. 한국에서 미디어를 통해 나간 최초의 애니메이션이 1956년 <HLKZ TV>의 ‘럭키(樂喜)치약 광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TV를 통해 수없이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CF들을 통해 단편애니메이션 작가들은 금전적인 이득 이외에 자신의 작품성향을 일반인에게 알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이러한 광고를 통해 자국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가장 잘 양성해낸 곳은 역시 ‘프랑스’다. 광고 제작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일반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을 단련한 작가들은, 자신의 작가적 성향이나 예술혼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장편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상업적인 느낌이야 떨어지겠지만, 심오한 주제라도 간결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표현해낸 여러 작품들을 내놓음으로써 세계 애니메이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세계의 원류가 된 폴 그리모의 <왕과 새>나, 수많은 SF애니메이션과 영화에 이미지 발상의 확장을 가져다준 르네 랄루의 <미개의 혹성> <시간의 지배자> <강다하>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특히 1973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미개의 혹성>은, 서로 다른 이종족(異種族)간의 만남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화해의 모습을 건조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이미지 속에 담고 있다. 아주 상식적이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킴으로써 SF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내실을 다지는 데 큰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하다. 파괴적이고 재빠른 메커닉이나 현란하고 화려한 미래도시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황량한 풍경 속에 거대하면서도 마치 종이인형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외계인의 노리갯감이 되는 인간의 모습은 어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표현해낸 디스토피아의 모습보다도 강렬하게 와닿는다. 이미지의 현란함만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최근이고 보면, 이처럼 밋밋한 죽을 먹는 듯한 작품들을 보는 데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순간이나마 순수한 일탈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단편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있고, 또한 그들이 참여한 상업적인 작품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부디 너무 난해하다 못해 수면제가 되어버리는 작품이나 현란한 이미지만으로 도배하는 ‘자기만족적 작품’이 아닌, 보면 볼수록 우러나오는 맛이 있는 작품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광고와 단편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유사점은 짧은 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강한 풍미의 음식만 먹다보면 미각이 둔해진다고들 한다. 예전보다는 미국 이외의 나라의 애니메이션 작품도 그리 구하기 어렵지 않게 된 요즘, 조금만 노력을 기울여 시간과 문화를 넘나드는 ‘작가’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