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의 만화를 거대 출판사가 펴내는 잡지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먼저 경의를 표한다. 과연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비주류 만화인 이경석의 만화가 상업잡지에 연재되고, 게다가 단행본으로까지 출판된 일이 우리나라 만화문화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즐거울까만 현실은 그리 부드럽지만은 않다. 삐딱하게 바라보면, 이미 한계를 보이는 일본식 시스템의 대안으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엽기’ 코드를 보여주는 비주류 만화를 스카우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관습과 이상적 정서, 일반적인 감수성에서 이탈해 있는 이경석의 만화를 혹 하마오카 겐지(<우당탕탕 괴짜가족> <반칙대왕>)와 같은 배설물 개그의 엽기만화로 육성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도 품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경석의 만화는 위험한 매혹으로 가득하다.
매혹으로 향하는 출구
<오! 해피 산타>는 시각 이미지와 이야기의 측면에서 모두 상식을 벗어나는 선에서 출발한다. 그래서인지 ‘엽기산타 코믹잔혹극’이라는 카피가 그리 어색하지 않다. ‘엽기’와 ‘코믹’, ‘잔혹’을 버무린 유행에 영합하는 만화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경석은 엽기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엽기적인 만화를 그렸다. 배설물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가고, 비듬이나 땀, 코딱지 같은 분비물을 통해 이야기가 전환되고, 냄새라는 궁극의 공격 수단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주로 로커)이 등장하는 만화들을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발표했다.
1997년 언더그라운드 만화잡지 <히스테리>, 1998년 <바나나>, 1999년부터 월간 만화웹진 ‘코믹스’(www.comix.co.kr)에서 활동을 했다. 가끔 <팬진공> 같은 잡지에 만화를 수록하기도 했으며, 웹진 ‘카툰피’(www.cartoonp.com)에서 <어둠의 자식들>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기괴한 상상력이 빛을 발한 작품은 웹진 ‘코믹스’에서 발표한 <금강보안경과 월경낭자>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배설물과 성이라는 두개의 금기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말 꼬리를 묶어놓은 뒤 발정한 암말 사진을 보여주자 그 말이 껍질만 남기고 튀어나온다는 이야기나, 튀어나온 말을 한입에 삼켜버린 주인공이 적에게 쫓기다가 똥의 추진력으로 탈출하고는 등 똥과 발기한 성기가 이야기를 끌고가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의 질펀한 향연이 펼쳐진다.
냄새, 분비물, 배설물 그리고 성기와 성에 이르기까지. 이경석의 만화를 끌고가는 힘은 피하고 싶은, 그리고 매혹적인 금기의 도구들이다. 가끔 언론에서 작가의 전직이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이경석은 만화를 그리는 지금도 이발쑈포르노씨밴드에서 객원 보컬을 맡고 있고,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
때문인지 <오! 해피 산타>에서는 엽기를 넘어선 페이소스를 만날 수 있다. 정리해고를 당한 남편이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자 부부싸움하다 던진 밥통에 맞아 죽고 결국 그 돈으로 부인과 아들의 생계비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나, 달동네에 팔순 노모와 결핵으로 앓고 있는 여동생과 함께 사는 이름없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달봉이. 동생 순자가 사경에 빠져 눈이 보고 싶다고 하자 울며 언덕에 오른다. 산타는 달봉에게 기타를 주고, 달봉은 기타를 치며 헤드뱅잉을 한다. 창가로 내리는 달봉의 비듬. 순자는 눈이 오는 모습을 보며 숨을 거둔다.
엽기를 넘어선 페이소스
<오! 해피 산타>는 얼어죽은 부모님을 먹고 기아 직전에서 살아난 뒤 산타 할아버지를 습격하고, 사슴의 뿔을 잘라 나온 꼬마 산타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황당한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다. 아이디어의 발상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전개는 신선하다. 페이소스 어린 에피소드에서 잔혹하고 황당한 아이디어까지. 이경석 특유의 냄새와 배설물, 분비물에 대한 집착을 엿보는 재미에다가 근엄함에 대한 조롱과 야유의 쾌감, 유치한 상상력의 유쾌함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만화는 자유로운 매체다. 규정된 칸 안에서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만화가 자유로운 상상력보다는 장르의 법칙에 주도된다. 이경석은 흥행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작가다. 언더그라운드나 웹에서 활동하던 작가를 상업잡지와 출판사가 펴낸 단행본에서 만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다. 가끔 전철역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싶고,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 해피 산타>는 즐거운 일탈의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혹 바른생활이 삶의 지표인 사람이라면 피해야 할 바이러스일 수도 있지만. 사족이지만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는, 이경석 만화의 연재를 결정하고 단행본을 출간한 용감한 편집자들에게 박수를. 소수의 마니아들을 겨냥한 비주류 만화를 아무런 마케팅 없이 시장에 내밀어 종내는 이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와 작가를 상처받게 만들어버리는 상업만화 시스템의 놀라운 괴력에 놀라움을! 그리고 이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외로운 전사들에게 연대의 애정을!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