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시대에 영화음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사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은 더 중요했다. 단지 그 음악이 필름의 `사운드 트랙`에 입혀져서 그림과 함께 가지 않았을 뿐이다.
무성영화시대의 음악은 `실황음악`이었다. 실제로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가 마치 오페라처럼 영화를 화면 바깥에서 받쳐주는 경우도 있었다. 여오하사에 길이 남을 무성영화인 <국가의 탄생>같은 대작을 상영할 때에는 스크린 밑에 넓은 악단석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15년 뉴욕의 리버티극장에서 하루에 2회씩 고정 상영되었고 나중엔 런던 스칼라극장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하는데, 영화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교향악단이 반주한 영화로 보고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은 예산 때문에 전문 피아니스트나 오르간 주자가 영화음악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는 영화음악의 연주를 음반으로 만들어 그것을 영화와 함께 트는 일도 있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성영화시대의 극장 전속 연주자들은 영화와 악보를 동시에 보면서 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정교한 `시간상의 일치`를 바랄 수는 없어도 일종의 강력한 감정적 자극제를 시각적인 것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희극배우이자 희극영화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풍짝 풍짝`하는 리듬을 가진, 딕시랜드 재즈풍의 음악은 채플린풍의 희극과 몹시도 잘 어울린다. 물론 그 음악과 흑백의 희극 무성영화간의 정서적 일치는 당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후대에 조합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당대에도 그 비슷한 음악이 영화를 받쳐주었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한 풍의 음악이 1920년대까지, 다시 말해 스윙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지배적인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채플린은 자기 영화의 거의 모든 음악을 담당했던, 상당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가 왼손으로 연주하는 첼로 주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첼로라는 악기를 매우 사랑했고 배우와 감독으로 유명해진 이후로도 꾸준히 레슨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영화로 성공하기 이전에는 음악산업에도 진출했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었다.
그가 작곡한 음악은 크게 봐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멜로디는 매우 로맨틱하다. 거의 감상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바이올린 소품들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멜로디들이라 할 수 있다.팬들의 마음을 아직도 애수에 젖게 하는 <라임 라이트>의 테마곡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리듬은 주로 4분의 2박자이다. 이것은 뉴올리언스 재즈로부터 비롯한 당시 대중음악의 기본 리듬이라 할 수도 있지만 채플린의 경우 천막극장 보드빌 무대에서 쓰이는 브라스 음악의 기본 리듬을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멜로디와 흥겨운 2박자의 리듬이 결합된 것이 그의 음악이다.
최근 그와 관련된 연주음반이 나와 팬들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그의 숨겨진 음악적 재능을 발굴하도록 해주는 <Oh! That Cello>라는 음반이다. 모두 첼로곡들이다. 채플린의 영화음악 이외에도 흔히 들을 수 없는 자작곡들이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다. 토마스 벡맨의 첼로 연주와 요하네스 세르노타, 가요코 마쓰시다의 피아노 반주로 되어 있다. 그렇게 빛나는 연주는 아니지만 은은하고 정감있게 채플린의 음악들을 풀어내고 있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