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는 무수히 많은 민담들이 전해내려오지만,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민담은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다. 유럽,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중동, 이집트, 러시아 등 사실상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쳐 대략 1천편 정도의 이야기들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도 이 유형에 속한다. 신데렐라 유형에 속하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주인공은 고아이거나 의붓딸이며, 계모의 시기와 학대로 고통받다가 동물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해결하고, 아름다운 옷을 갖게 된 뒤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지만 그것을 계기로 왕자와 혼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꿈과 아름다움이 가득하지만 민담에는 폭력적 요소와 잔혹성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언니들이 유리구두에 억지로 발을 끼워맞추기 위해 스스로 발을 잘라내는가 하면, 신데렐라의 혼인식날 비둘기에 눈을 쪼여 장님이 된다. 베트남판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할록이 언니를 죽여 젓갈을 담근다. 우리나라의 팥쥐가 겪는 참혹한 비극과 같다.
저자에 따르면 민담의 단골 메뉴가 본래 성(性)과 폭력인데다가 민담이 형성되던 시기의 현실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폭력과 성의 문제를 충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앞으로 닥쳐올 인생의 힘든 문제들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암시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동화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에는 그런 잔혹한 장면이 없을까? 미국식 디즈니 만화영화가 어린이들의 세계를 꿈과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면서 본래 이야기의 다양한 의미를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퍼질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 프로이트식으로 말해서 여성에게 최초의 연인이 아버지라고 한다면, 주인공에게 계모와 언니들, 요컨대 가족 내 여성들은 모두 경쟁자가 된다. 그 경쟁자들의 핍박을 극복하고 새로운 남성, 즉 왕자와 혼인함으로써 비로소 주인공은 정상적(이라고 인정받는) 가족 관계를 성취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일종의 교육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기에, 널리 퍼졌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