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밤> O.S.T 크림 발매
선생은 깡패, 학생도 깡패, 깡패는 선생, 형사와 지방 보스는 멍청이, 여자는 왈가닥…. 천년의 고도 경주는 고삐리들이 패싸움을 하는 수학여행지, 단순한 역할 바꾸기를 통해 유쾌한 뒤집음이 벌어지는 지방 도시일 뿐이다. 물론 그 뒤집음이 효과적으로 서술되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은 ‘우정’이라는 뻔한 블랙홀로 빨려들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영화는 그러한 뒤집음을, 손익분기점을 골치아프게 계산해내면서 시도하고 있기는 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는 과연 어떤 맥락을 지니고 있을까. 사실 이 영화가 그 노래에 심각한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노래는 오랫동안 기억의 한 편린이어왔을 뿐이다. 마치 신라가 오랫동안 우리 정신의 모태인 어떤 원류적인 태도(화랑?)를 간직해온 고대 국가로 소문처럼 우리에게 전해져 왔듯 말이다. 신라가 기억 저편의, 이 쓰레기 자본주의 나라의 현재와 아무 관련없어 보이는 한 편린인 것처럼 신라의 달밤은 뽕짝에다가 샹송의 감수성을 섞었다는 어느 가수의 오래된 노래일 뿐이다. 그것들은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게 존재함으로써만 이 영화에서 의미화된다.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는 모든 역할이 앞뒤가 맞지 않게 뒤바뀌어 있고 모든 의미가 흩어져 있는 이 시대의 부유하는 의식들(아마 그 의식들은 특히 관객의 기억일 것이다)의 밑바닥에 있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과거, 그러면서도 묘하게 우리의 심리 속에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장치이다. 수학여행에 놀러온 아이들조차 그 노래를 부르며 논다. 누가 그 노래를 가르쳤는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노래를 안다.
그런데 그 노래는 노래방 뽕짝 스타일에서 강력한 메탈 리듬까지, 여러 노래방식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이 옷바꾸어 입기를 통해, 모범생 쑥맥이 깡패가 되기로 결심하듯,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는 조금 현대적인 코미디의 일부가 되어보고자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노래는 그 쑥맥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각하면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는 일단은 ‘씁쓸함’이다. 무기력하게 얻어터지는 지방 깡패들처럼, 신라의 달밤을 부른 그 모범생 아이는 청중(동료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무기력하게 무대에서 끌려 내려온다.
그 다음에 올라간 강산고 보스 최기동이 부르는 노래는 신해철의 노래이다. 이 노래의 선택은 탁월했다. 마초적인 이미지를 비꼬면서 동시에 세우는 노래로는 이 노래처럼 촌스러운 노래가 딱이다. 그 노래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 패싸움이 벌어진다. 그러고나서 노래의 무대에는 아무 노래도 없다.
그렇게 빈 자리에, 이 영화는 ‘인디음악’을 채우고 있다. 장면들의 전개를 책임지는 음악들은 지금 이 땅에서 유행하는 댄스음악이 아니라 인디 록들이다. 비주류 음악들을 패싸움장면에서, 라면집에서,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흘려내 보냄으로써 이 영화의 색채는 그나마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는 영화들 바깥의 것이다. 물론 비주류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운드트랙의 프로듀스를 담당한 손무현의 음악은 적당히 깔끔하고 적당히 속물적인 영화의 분위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운드트랙이 2장짜리 CD로 발매되어 있다. 두장의 CD를 한장의 가격으로 제공하는 게 요새의 추세인가보다. 사운드트랙은 크라잉 너트, 레이지 본 같은 펑크에서부터 이한철(bulldogmansion)의 모던록, CBmass 같은 힙합, 그 밖에 레드 플러스, 고릴라 비스킷, 멀리는 한대수의 음악까지 모아놓고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영화의 상업적인 가능성과 관계없이, 사운드트랙에도 나름의 상업적인 비중을 둔 듯한 편집과 기획으로 보인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