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visible Band>
소니뮤직 발매
이 앨범 <The Invisible Band>는
아무래도 이들 트래비스(Travis)의 전작인 <The
Man Who>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실은 너무 대놓고 따르고 있어서 어리둥절할 정도다. 모든 곡은 변함없이 보컬 겸 기타리스트인
프랜 힐리(Fran Healy)가 썼고 프로듀서는 변함없이 나이젤 고드리치이며 아트워크도 변함없이 정물화된 풍경과 밴드의 초상을 병치한 서정적인
사진들이다. 더욱 중요하게도, 곡들 역시 <The Man Who>의 연장선상에 있는 내성적이고 고즈넉한 열두곡의 소품들로, <The
Man Who>만큼 좋은 곡들도 확실히 있다. …아니 잠깐, <The
Man Who>가 뭐냐고?
그것은 바로 1999년 말 영국의 밀레니엄(엄밀히 따지면 그때가 아니지만 어쨌든 다들 모른 척 난리였으니까)을 당당히 장식한 음반이었다. 그리고
트래비스란 이 그룹은 9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오랜 친구들로 결성된 뒤, 오아시스(Oasis)가 브리튼 제도 내에서 아직은
꽤 힘을 쓰고 있던 97년경 런던으로 상경해 ‘내가 하고 싶은 건 오로지 록’(<All I Want To Do Is Rock>은
이들의 데뷔곡이었다)이라며 갓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젊은 4인조였다. 그런데 <U16 Girls> 같은 혈기왕성한 넘버를 연주하며
애초 포스트-오아시스군의 일부로 분류되었던 이들이, 그 직후 99년 중반에 돌연 포스트-라디오헤드류의 사려 깊은 <The
Man Who> 앨범을, 그것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 내놓음으로써 의외의 좌회전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당연한 수순으로 원래의 팬들은 맥이 빠져버렸고 평단조차 속이 빤히 보인다며 이 앨범을 예사롭게 보고 넘겼지만, 정작
영국 국민들은 이상하리만큼 하나둘(나중에는 떼지어) 이 음반을 사기 시작했고, 내처 99년 영국을 평정한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앨범으로 만들어버렸다.
라디오에서는 <Driftwood>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Turn> 등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하루에 한번 이상씩은 이들의
노래를 틀어댔고, 이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어버린 반대파들이 “문장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내는 놈들”이라며 앨범 타이틀의 관계대명사 하나에조차
시비를 걸었을지언정 그해의 트래비스가 영국의 국민밴드라는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2년 만인 올 6월, 이들의 신보가 공개된
것이다. 그것이 <The Invisible Band>이다.
전작이 대단한 성공작이었던 만큼 아마도 누구나 전작과의 변별점을 찾으려 들 이 시점에 이렇게 보란 듯 전작의 (노골적인) 연장선을 택한 것이
밴드의 나름대로의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략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다. 혹은, 이들 평소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보통사람들’로서의 그 착한 이미지를 고려해 보건대는 전략 같은 거 전혀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 문제다. 이 경우 그건 ‘소탈함’이라기보다 ‘안이함’이기에. 좀처럼 안이한 방식을 택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안이해 보이는 스텝을 밟은 탓에, 결과적으로 <The
Invisible Band>의 수록곡들은 절대 그 자체로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The
Man Who>의 업둥이처럼 취급될지도 모를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차라리 이것이 신보가 아니라 <The
Man Who>에 미처 실리지 못했던 곡들을 구제한 (예컨대) 2.5집으로 발표된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안타깝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문영/ 팝음악애호가 montypyth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