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가 골목길에 서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어떻게? 여자가 먼저 남자의 뺨을 때린다. “뭐야, 내 손이 아프잖아.” 그리고 뺨을 내밀고 남자의 손찌검을 기다린다. 놀란 남자는 소리지른다. “그만하래두! 이런 거 취미없어!” 그러나 여자는 간절히 바란다. 남자는 과연 그녀를 때릴까, 말까? 잠시 뒤 남자는 집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미친 듯이, 헐떡대며,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간다. 때렸을까, 말았을까? 이 시대의 연애가 만들어내는 물음들이다.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는 구태의연한 스캔 만화와 웹툰을 벗어나 다양한 연재 만화를 싣고 있는 ‘엠파스 만화’에서도 묘한 빛을 내고 있다. 세심한 그림 선이 개성 강한 이야기의 베틀을 따라 잘 엮여진 작품 속을 들여다보면, 강도하라는 이름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이 정도 실력의 만화가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작가 소개를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강도하는 <슬픈 나라 비통 도시>의 작가이자, 만화 웹진 ‘악진’의 운영자인 강성수의 새로운 필명이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핵 발전소, 누구보다 강하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우리를 매질해왔던 그가 낯선 사랑의 이야기로 우리를 쓰다듬어준다. 과연 진심일까?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보통 사람인 것 같은 주인공 캣츠비는 스물여섯살의 날백수다. 이 남자는 강제철거가 예정된 골목길 옥탑방에서 학원강사인 친구 하운두와 함께 살아간다. 그의 어제가 어땠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의 그는 6년 동안 어영부영 사귀어온 섹스 파트너, 혹은 여자친구인 페리수의 몸 위에서 힘을 쓰고 있다. 이어 그녀가 전해주는 청첩장을 건네받으며 그의 연애는 새로운 골목으로 걸어들어가야 한다.
개와 고양이의 탈을 쓰고 있는 귀여운 얼굴의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이 전해주는 사랑 이야기는 달콤하지만은 않다. 사랑은 골목길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나온 아주머니와, 과외하러 간 대저택에서 사모님과, 결혼정보회사에서 같은 C급으로 엮어준 여자와 이루어진다. 조금은 화사한 컬러로 다듬어지긴 했지만, 장정일의 소설이나 홍상수의 영화를 통해 만났던 낯뜨거운 리얼리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언더 시절 강성수의 화려하고 과격한 연출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웹브라우저에 맞춰 세로로 길게 짜낸 서술의 선과 고정적인 앵글을 반복하며 지루한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연출로 강도하만의 만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