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메이지 시대. 에도에서 도쿄로 이름이 바뀐 지 27년이 지난 해다. 화려한 신문물로 어두운 중세가 밝은 근대로 넘어가던 이때에 수도 곳곳에서 괴이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낙인 같은 손자국을 등에 찍어 사람을 태워버리는 화염마인,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검은 동물을 데리고 다니며 갈고리 같은 손으로 얼굴을 찢어버리는 야미고젠, 승복으로 만든 자루에 반딧불 같은 영혼을 담아 둘러메고선 밤길을 걸어가는 영혼 장수…. 요괴인지 인간인지 모를 존재들이 벌이는 사건들은 점점 불운한 섭정 귀족인 타카츠카사 가문의 주변으로 모여든다.
만화가보다는 원작자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 <동경이문>(학산문화사 펴냄)은 악령 시리즈, 고스트 헌트 시리즈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호러판타지 작가 오노 후유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작품 전반에 괴기의 기운이 넘쳐나지만, 완전히 드러내놓은 판타지라고 보기는 또 어려울 것 같다. 사건을 설명해가는 반(半)전지적 시점의 인형사와 인형을 보면 요괴물 같다가도, 사건을 추적해가는 주인공들인 신문기자와 거리 광대의 태도를 보면 추리물에 가까워 보인다. 이 양쪽의 긴장이 작품 전체에 묘한 매력을 부여하고 있다.
만화가인 가지와라 니키의 화풍과 실력은 원작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고전적인 허세가 깃든 대사나 일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의복의 묘사 같은 면에서는 <음양사>를 느끼게 하고, 두 남자주인공이 서로의 개성으로 사건을 파고들어가는 전개에서는 <백귀야행>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개성과 완숙미도 갖추고 있어 더욱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보통의 괴기 미스터리 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개그 묘사도 거의 없고, 고전풍의 언어를 거르지 않고 사용하며, 몇겹으로 서사의 구조를 겹쳐놓은 면 등 여러모로 끈기있는 독자들을 위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이은 사건들의 박력, 현실과 환상 속에 오묘하게 얽힌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