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과 곰팡이의 여름이다. 이 지긋지긋한 계절이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열대야, 모기, 팥빙수, 그리고 뭐가 있을까? 빠뜨릴 수 없지. 이토 준지. 여름 장르의 핵은 호러, 호러 장르의 핵은 이토 준지.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가? 30도를 오르내리는 초열대의 밤에 찾아오는 이토 준지는 반갑기도 하고 꺼림칙하기도 하다. 그의 만화가 주는 쾌(快)야 분명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만만치 않은 불쾌(不快)를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단편집 <어둠의 목소리>(시공 코믹스 펴냄)도 그 규칙을 조금도 깨뜨리지 않는다.
그 옛날 홍수에 떠내려 보낸 부인을 잊지 못해 환상의 강물 위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노인, 기름에 절어 있는 고깃집에서 밤마다 식용유를 훔쳐 먹다 기름덩어리가 되어가는 아들, 동료들을 위해 피를 토해주는 흡혈 박쥐에 매료되어 기묘한 구애를 하고 있는 남자, 동네의 폐가에 만들어진 도깨비집에서 떠돌이 가족의 무시무시한 비밀을 알게 되는 소년들….
이토 준지는 여전히 집착과 호기심이라는 두개의 끈적끈적한 촉수로 낚아챈 경악의 이미지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토 준지는 현대 호러만화의 상징이지만, 그의 만화는 언제나 과거를 지향한다. 촌스럽다 싶을 정도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인물들은 언제나 뻣뻣하게 움직이고, 회고의 화법은 싱글 LP처럼 반복된다. 그렇지만 하나의 아이디어를 물면 그것으로 밑바닥의 상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는 집요함만큼은 대단하다. 그의 방에는 쓰레기인지 골동품인지 구별하기 힘든 수집물들을 이리저리 엮어 만들어낸 기이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그 곰팡내야말로 사람들이 그에게 끌리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여러 단편들이 그렇지만, <어둠의 목소리> 역시 공포라기보다는 괴기에 기대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무섭다’기보다는 ‘깜짝 놀랐다’, ‘싫다. 어디까지 갈 거냐’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박쥐에 물려 촘촘히 생겨난 구멍, 얼굴 가득한 여드름에서 국수처럼 흘러나오는 기름, 어둠 속에서 삐죽 튀어나온 괴녀의 몸체…. 이토 준지는 개구쟁이다. 그의 캐릭터 중 하나인 소이치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너무 좋은 게다. 호러는 극단적인 콤플렉스와 문제적 상황을 통해 심리적 사회적 고뇌를 이끌어내는 장르이지만, 또한 순간의 감정에 매달리는 안이한 장르이기도 하다. 이토 준지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여름마다 찾아오는 그의 만화도 적당히 즐길 수 있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