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주제를 철학적으로 다루는 데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알랭 드 보통이 이번에는 여행을 주제로 문학, 예술, 철학 그리고 자신의 여행 체험을 엮었다. 여행의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들과 상응한다. 여행의 시작은 어디인가? 왜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여행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어떻게 간직할 수 있는가?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어디인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기대가 막상 실제로 여행하면서 무너지거나 변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드 보통은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을 꿈꾸며 ‘원시적인 순수와 낙관’을 찾아 바베이도스로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지의 모습에 실망하고 만다. 여행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라는 게 드 보통의 통찰이다. 자유로운 상상과 고독을 즐기면서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해주는 여행,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으로의 여행이 여행의 본모습이 아닐까?
여행의 각별한 동기에 관해 드 보통은 플로베르와 훔볼트의 여행을 예로 들면서 고향의 권태로부터 탈출, 부르주아지의 신념과 행동, 예컨대 내숭, 속물근성, 거드름, 오만, 인종차별 등에 대한 분노, 자기가 속한 문명에 대한 경멸 등을 이야기한다. 이국에서 느끼는 사소한 것들의 유혹, 이국적인 요소들이 일으키는 강렬한 내적 반응 등이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우리의 삶을 고양한다는 것.
한편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에 관해 드 보통은 흥미롭게도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나의 침실 여행>(한국어판 제목 <내 방 여행>, 지호 펴냄)을 제안한다. 드 보통에 따르면 ‘용감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위한 훨씬 더 실제적인 여행 방법’이 바로 침실 여행이며, 이는 호기심을 갖고 시선을 돌리면 우리가 지금 있는 장소도 멋진 여행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습관, 타성, 무관심에서 벗어나 주변에 있는 일상의 사물과 장소를 새롭게 경험하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충고라 하겠다. 보들레르, 플로베르, 러스킨, 워즈워스, 고흐, 버크, 위스망스 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드 보통 자신의 여행 체험과 갈마들면서 철학적 여행론 혹은 여행의 철학과 심리학이 분방하게 전개되는 특이한 책이다.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영목 옮김 | 이레 펴냄〕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