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양쪽, 혜화 로터리와 이화동 사거리 사이에는 심야에 이륜차가 들어갈 수 없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돌돌거리는 나의 스쿠터가 4년째 이곳을 굴러다니고 있지만 한번도 단속하는 걸 보지는 못했다. 다만 그 금지의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번쩍거리는 라이트를 달고 쇼바를 한껏 올린 모터바이크를 타고 미친 듯 중앙선을 넘나드는 폭주족들. 한때 이곳도 신천 등지와 더불어 폭주족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것이다. 그때 나도 그 미친 정신을 이해해보고자 밤새 ‘오빠 달려’ 하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만 같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폭주족은 직업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계속 달릴 수 있잖아.” 다카하시 쓰토무는 <폭음 열차>를 통해 1980년대 초반 도쿄의 소년 폭주족들을 그리고 있다. 한 영웅을 내세우기 위해 폭주족이라는 백그라운드를 잡은 게 아니라, 폭주족이라는 커다란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한 소년을 렌즈의 중심에 잡아두고 있다.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다. 열다섯 소년은 서른다섯이 되어 있다. 이십대 초반에 그는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에이, 뭐 그런 걸 새삼스럽게.” 사십대 후반이 넘어가면서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한때 그랬지. 모든 게 아름다웠어.” 막연한 부정과 무조건적인 온정 사이에서 자기 인생의 가장 문제적인 때를 되씹어볼 시기가 있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전학하게 된 타카시는 새 학교에서 약간의 불량기로 환영받으며 폭주족 똘마니들의 친구가 된다. 학교도 집도 별다른 재미가 없는 때에 경험하게 된 폭주족 집회. 그는 두려움 너머의 어떤 빛을 보게 된다. 그 빛은 모터바이크의 뒷자리에 앉았다 손잡이를 놓쳐 도로로 곤두박질치는 죽음의 빛일 수도 있고, 다른 조직의 패거리에 붙잡혀 코피를 쏟아내는 패배의 빛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금기 너머에 있는, 아니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여진 그 표지판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환희의 백열일 수도 있다.1980년대의 소년 폭주족, 그 시절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 다만 오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가 바로 그 시절의 아이들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은 안다. 10대 후반, 모든 것을 넘어서려고 하지만 그 방법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이. 가미카제의 소년병들도, 이라크의 자살 특공대들도, 소년 폭주족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만화가 십대의 폭력을 미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폭력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만화밖에 없지 않을까?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