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익숙하지 않음에 불편할 것이다. 인물들도 이상하고,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는 무언가 답답한 것 같다. 시각적으로 낯설어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다. 톤도 없고, 때론 회색도 없이 흑과 백뿐이고, 명확한 직선도 없는 배경까지 모두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정송희의 만화는 무엇보다 작가 개인에 의해 그려진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화의 원초적인 힘을 보유한 작품이다.
소박하지만 풍부한 그림으로 정송희는 삶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한다. 표제작인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의 경우 어린 시절 각각 다른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자와 가해자였던 남자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되돌아본다. <지나 사라지다>는 희생만을 강요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유년의 틈> 역시 어린 시절 상처받은 기억을 지닌 두 사람의 회상을 그린다. <누드모델>은 육체적 차이에 대한 타인의 폭력적인 발언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게 뭔지 몰랐어>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정송희의 작품들은 대부분 상처로 남은 기억을 되돌아보거나, 바로 지금 당하고 있는 상처를 이야기하는 데 주력한다. 과거의 기억이건, 현재의 상처건 바로 상처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정송희의 작품은 아주 친한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는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백한다. “난 이런 상처를 갖고 있어.”
정송희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류 만화 주인공들의 (판타지한 욕망으로 디자인된) 상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백은 내 친구의 고백처럼 받아들여진다. 충격적인 고백이 아니라 감싸 안아주고 싶은 고백이라는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깊은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쓰디쓴 삶의 뿌리를 내비치는 친구의 모습으로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그 손을 잡게 된다. 정송희 만화의 힘이다. 자연스럽게 상처를 내보이는 힘, 그리고 그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힘, 이 모든 힘의 원천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내려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꾸준히 다양한 만화를 창작하고 있는 만화동인 ‘박카스’의 일원인 정송희는 1999년 월간만화잡지 <오즈>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도 대부분 그 결과물들이다. 기본적으로 드로잉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화 스타일이지만, 미묘하게 작품마다 그 스타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관계>와 <그게 뭔지 몰랐어>처럼 각각 다른 두 작화 스타일을 한권의 책에서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내 친구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용기가 있다면, 이 만화를 아주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