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만화 <트라우마>가 드디어 탄탄한 두권의 책(애니북스 펴냄)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2003년 <스포츠서울>에 연재 개시된 이 만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몇년만 잘 버티면 양영순의 <아색기가>, 김진태의 <쾌걸 조로>에 버금가는 작품이 될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지금, <트라우마>는 한국 신문 만화, 개그 만화의 안방에 떡허니 자리를 잡아버렸다. 일본 메이저 잡지인 <빅코믹 스피리트>에까지 진출했다. 참으로 건방지기까지 한 도약이다.
만화가 곽백수가 1998년 <영점프>에 투맨 코미디를 선보였을 때 이미 그의 개그 자질에는 뭔가 꾸리꾸리 잘 숙성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비슷한 정도의 재능을 선보인 만화가들이 신문 연재에 돌입해서는 불과 한두달 만에 맥을 못 추고 쓰러진 반면, 그는 단기간에 풀타임 신문 만화가로 정착해 지칠 줄 모르게 공을 뿌려대고 있다.
곽백수가 보여주는 그림의 테크닉은 여타의 세련된 신진 만화가들에게 뒤질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한 듯 힘을 뺀 그림으로 구현된 인물들은 생활 속에 살아 있는 개성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단번에 만화 속에 참여하게 만든다. <트라우마>는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고전적인 만화다. 거기에는 얄팍하게 광을 낸 팬시상품용의 캐릭터도 없고, 작가의 사적인 일기를 공개함으로써 편리한 공감을 자아내는 장치도 없다. 생활이 깃든 캐릭터, 기승전결이 분명한 구조, 마지막에 살짝 뒤집어주는 반전…. 정통 개그 만화가 해야 할 일을 그대로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다.
<트라우마>가 진정 빛을 발하는 것은 온갖 착한 척이 남발되는 에세이 만화 범람의 시대에 ‘살짝 못된 만화’의 매콤한 유머를 지켜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라우마>의 찜질방에는 맥반석 찜질, 참숯 찜질, 불가마 찜질… 그리고 몽둥이 찜질이 있다. 슈퍼도 문 닫은 한밤중, ‘돛대’라며 몰래 남은 담배를 구겨버리는 놈과 또 굳이 그것을 뒤져 찾아내는 놈이 진짜 친구다. 삼을 캐러 가기 전날 밤, 유혹하는 아내를 물리치고 잠자리에 든 심마니의 꿈에 나타난 것은 산신령이 아니라 삼신할매다.
아직 <트라우마>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이 자주 보인다.
양영순 만화의 점층적인 벗기기 모션, 김진태 만화의 다채로운 직업군 캐릭터의 반복적 활용과 같은 것들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법이나 장치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것도 만화가로서는 칭찬받아 마땅한 자질이다. 그러나 10권을 목표로 한 이상 ‘이것이 곽백수식 개그 문법이다’ 싶은 장치들도 풍성하게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