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스펙터클의 원조격인 히치콕의 <새>(1963)는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러운 특수효과가 여전히 놀라운 공포효과를 유발하는 수준급의 고전이다. 이 말이 <새>의 기술력에 대한 폄하로 들려선 안 되겠다. 히치콕은 진짜 새와 기계 새를 총동원하여 ‘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전대미문의 이미지를 합성해냈을 뿐 아니라, 거기서 발견될 ‘옥에 티’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풍부한 의미망을 또한 고전적으로 직조해냈다는 뜻이다.
영국영화연구소(BFI) 고전영화 시리즈 중 하나인 <새>(카밀 파글리아 지음/ 이형식 옮김/ 동문선 펴냄)는 이러한 제작과정과 영화적 의미를 더없이 충실하게 밝혀주는 ‘<새>잡기 완전정복’ 해설서이다. 광범위한 리서치와 꼼꼼한 영화읽기를 아우르는 저자는, 가령 멜라니(티피 헤드런)의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의 제임스 본드 차와 유사 모델)에서 성적 모험가로서의 현대 여성의 자유를 끄집어낸다. 저자의 우상이기도 한 멜라니는 히치콕 특유의 가족 관계 속에서 남성 쟁탈전을 벌이는데, 세련된 인공미와 공격적인 섹슈얼리티는 은근히 새의 상징성과도 겹친다. 애완동물숍에서 시작한 영화는 구관조 같은 어여쁜 장난감이 광포한 자연으로 돌변하는 과정을 통해, “억압되었지만 결코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성과 식욕의 원시적 힘의 분출”을 다루기 때문. 히치콕의 <새>는 그뒤 할리우드를 공습한 메뚜기, 개미, 상어, 공룡 따위가 인간 외부의 야만을 대변했던 것과 달리 “억압된 것의 귀환”이란 테마를 물고 온 셈이다.
그러나 정신분석만 횡행하는 골아픈 책으로 오인하면 곤란하다. 인문학 교수인 저자는 히치콕에 접근하기 위해 지젝 같은 철학자나 트뤼포 같은 영화광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바르트가 발자크 단편에 대해 했던 것처럼 거의 숏 바이 숏으로 <새>의 의미코드와 문화코드를 짚어가는 것. 서스펜스 테크닉은 한마디도 없다가 패션의 함의에 대해선 쉴새없이 떠드는 이 책은 마치 DVD 서플먼트로 실린 문학적 코멘터리처럼 보인다. 때로 너무 미시적이고 과시적인 과잉독해가 할말을 잃게 하지만, 모든 디테일엔 의미가 있다는 건 히치콕도 공유하는 고전적 전제다. 여기다 한뜸 한뜸 수놓듯 토를 다는 저자의 공력은 영문학에 기반한 서구 교양의 너비로 영화를 다채롭게 품어낸다. 교양서로 읽는 맛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정승훈/ 영화평론가 reptile2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