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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 반항?
2001-06-07

쾌락의 급소 찾기 32 - 가장 이겨내기 어려운 콤플렉스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하국상은 왜 죽음을 무릅쓴 지옥훈련을 감행했을까? <미녀는 괴로워>의 칸나는 왜 거액을 쏟아부어 전신 성형을 해야만 했을까?

<타짜>의 도일출이 24시간 궤짝 감금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포커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들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얽어놓았던

지독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 만화란 ‘허풍과 과장의 예술’이라고 말하지만, 그 극한의 인물들을 창조하기 위해서도 그들 내면의

콤플렉스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치다.

성형미인, 외모 콤플렉스의 승리자?

흔히들 군인들은 치마만 두르면 침을 흘린다고 하지만, 사실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오히려 휴가를 나와서 여자들을

만나면 실망감에 치를 떤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매일 텔레비전에서 미모의 늘씬한 여자들만 보다보니 사회의 평균치에 적응할 수가 없기 때문.

비주얼의 시대, 그래서 외모나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는 만화주인공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고전적으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여성들이 사고로 인해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면서 고통받는 경우들이 많다. <디자이너>에서는 각광받는

신진 모델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아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절망에 빠지게 된다. <유리 가면>의 쓰끼가게 선생은 화재로 인해

얼굴 절반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고 긴 머리로 가리고 다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외모의 변화는 그들의 성격에도 심대한 변화를 주게 된다. 그전까지

항상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인생을 평화롭고 밝게만 보던 여주인공들은 이빨을 깨물고 자신의 능력을 고양시키지 않으면 인생의 그늘 속에서 썩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아미는 모델에서 디자이너로, 쓰끼가게는 연기자에서 연기 선생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유리가면>의 마야나 <캔디캔디>의 캔디는 다소 평범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끈기있는 태도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평범하기는 했다. 진짜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의 서러움을 대변해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 젊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른바 ‘성형미인’ 만화들은 외모 콤플렉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의 칸나나 <`ol 비주얼족`> 의 마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선천적인 외모의 한계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전신 성형을 감행한 주인공들이다. 과거의 만화라면 분명히 그 ‘못생겼던 전력’이

드러나 망신당하는 신세가 될 게 뻔하지만, 이제 그녀들은 당당히 아름다워질 권리를 주장한다. <`ol 비주얼족`> 에서는 ‘남자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호리기리까지 성형미인의 대열에 끌어들인다.

플러스의 에너지, 쾌활한 승부

그러나 세상은 이처럼 밝고 쾌활하게 진행되어가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린 힐>의 제18화 ‘애벌레의 슬픔’편에서는

자신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애벌레라고 여기는 못생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나온다. 그는 자신만큼 추악한 외모를 지니고도 매일 포르노 잡지와

바나나를 사가는 오카를 경멸하며, 자신은 언젠가 성형수술로 미남인 본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의사들은 고개를 젓고, 오카는

그를 형제라고 부르며 달려와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오카의 철학을 들어보라. “추남인 자신을 받아들이면 그때부턴 천국이야,

천국. 왜냐면 잃을 게 없거든.” 자포자기의 오카와 신체혁명의 칸나, 어느 쪽이 좀더 나은 해결책일까?

그래도 그들은 문제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러나 ‘숨겨진 감정의 응어리’인 콤플렉스는 좀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공포의 콤플렉스

군단인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혼혈, 불구, 추남과 같은 외면적인 콤플렉스의 주인공들보다 고치기 어려운 것은 철저한 ‘기사 콤플렉스’에 빠진

오혜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만화의 남성들 모두가 걸려 있는 ‘승리 콤플렉스’는 독자들까지 감염시키고 만다.

90년대 이후의 만화들이 밝아진 데에는 어느 정도 이 승리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졌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기는 것이 좋아서 싸운다. 마이너스의 에너지가 아니라 플러스의 에너지다. 산왕 신현철과의 맞대결에서 스스로 패배 콤플렉스에

걸린 북산의 채치수를 구원한 것은, 한때 그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2인자의 콤플렉스’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변덕규이다. 그는 횟집 주방장 모습으로

나타나 채치수에게 생선 밑에 깔리는 무 역할을 하라고 한다. 1등주의의 콤플렉스를 역할과 분업 모델로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베스트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면, 능남의 경태처럼 ‘핵심 체크’를 하는 스포츠 평론가라도 될 수 있다.

마더 콤플렉스에서 관음증 환자까지

그러나 무의식에 내재하는 복합적인 콤플렉스들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화해갈 때, 그것은 수많은 ‘범죄만화’를 양산해낸다.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만화에서 범죄자들의 엽기적인 살인에 대한 논리적 동기가 부족할 때는 어린 시절의 심리적 충격을 빈번하게 끌어들인다. 게다가

<다중인격탐정 사이코>나 <지뢰진>은 그 주인공들이 정신질환에 가까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심리호러만화라면 더욱 풍부한 임상 자료들을 모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극단적인 주인공들이 판을 치는 만화의 세계야말로 최악의 정신병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은하철도 999>의 철이는

마더 콤플렉스, <타이거마스크>는 연기성 인격장해, <닥터 슬럼프>는 관음증 환자이다.이명석|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