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과 상관없는 일화 한 토막.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방송국의 예능 PD 하나가 오래 된 외국의 인기 프로그램 테이프를 구해 집에서 보면서 ‘왜 저 장면은 저렇게 처리했을까’ 하고 꼼꼼하게 모니터를 하고 있었다. 평소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아내도 옆에서 같이 앉아 “저 부분에 분명 어떤 포인트가 있어”라며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는데, 이런 심각한 부모의 모습을 보던 그 집의 6살짜리 딸이 하는 말, “그냥 보고 웃자고요.”
지난주에 <톰과 제리>의 척 존스를 소개했더니, 의외라는 내용의 메일이 몇통 왔다. 그동안 소개했던 예술지향적인 작품들에 비해 아무래도 좀 튄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톰과 제리나 벅스 바니, 대피 덕, 트위티 등 30년대 워너브러더스와 MGM에서 만들어낸 일련의 ‘스타’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들은 디즈니의 우아한 작품이나 유럽의 작가주의 애니메이션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이 작품들은 30∼40년대까지는 영화관의 막간을 채워주는 소일거리였고, TV에서는 아이들 시간대인 ‘툰 타임’의 단골 프로그램이었다. 어찌보면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일회용 오락’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장본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기본정신 중 하나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황의 연출을 통해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벅스 바니나 톰과 제리는 분명 탁월한 ‘작품’이다. 또한 이를 제작한 척 존스, 택스 애버리, 프리츠 플레링은 우리가 미야자키 하야오나 프레데릭 벡 못지않게 유념할 만한 작가들이다.
30∼40년대 디즈니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미국애니메이션의 주류를 이룩한 택스 애버리는 1908년 미국 텍사스주 출신이다. 원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한때 은행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31년 월터 란츠의 스튜디오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애니메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애버리는 연배로 볼 때 지난주에 소개한 척 존스의 선배에 속한다. 그는 워너브러더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척 존스, 프리츠 플레링, 로버트 매킨슨, 프랭크 타실린 등과 함께 벅스 바니, 패디 덕, 앨머 프드, 트위티, 실베스터, 포기 피그, 요세미티 샘, 레그 혼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을 탄생시켰다. 애버리 작품의 특징은 비현실적인 유머와 과장된 표현, 기승전결을 무시한 자유로운 이야기 전개이다. 동화 ‘빨간 두건’을 성인 코믹물로 새롭게 해석한 그의 대표작 <레드 핫 라이딩 후드>는 그런 그의 익살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그는 디즈니가 틀을 정립한 뒤 미국애니메이션에서 관행화했던 점잖은 웃음에 반기라도 들듯 시종일관 때리고 부수는 과도한 폭력과 외설적인 묘사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파격 속에서 그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폭소를 터트리고 즐거워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냈다. 대책 안 서는 악동 같은 그의 작품은 ‘막스 브러더스’ 같은 초창기 슬랩스틱코미디의 대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거꾸로 그가 보여준 일련의 개그들은 이후 ‘애보트 앤 코스텔로’나 밥 호프 같은 코미디언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택스 에버리가 탄생시킨 최고의 캐릭터로는 ‘벅스 바니’를 꼽을 수 있다. 벅스 바니는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애니메이션 주인공 중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형성된 캐릭터이다. 비교적 점잖은 편에 속했던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와는 달리 ‘벅스 바니’는 뻔뻔스럽고 거만하고 야비했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의 ‘착한 척하는 주인공’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못된 모습이 신선하게 와닿았다. 애버리는 벅스 바니를 통해 미국애니메이션에서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풍자나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을 마음껏 펼쳤다. 사람들은 벅스 바니가 사기꾼 못지않은 뻔뻔함과 권모술수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특히 골탕을 먹는 상대가 대체로 기업가나 유명한 영화감독, 스타 등 사회 상류계급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벅스 바니의 ‘악행’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김재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