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작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밤이었다. 잘 아는 만화편집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전했다. 송채성은 젊은 작가였다. 나이만이 아니라 생각이 젊고, 작품이 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젊음이 오늘보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작가였다.
그의 만화에 대한 글을 처음 쓴 것은 <취중진담> 1권이 출간되고 난 뒤 바로 이 지면에서였다. 나는 그 지면에서 “작가 송채성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절제의 미학이다. 만화는 절제의 예술이다. 역설적이지만 버림의 예술이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뒤, 송채성은 <취중진담> 2, 3권과 <쉘 위 댄스> 그리고 <오후>에 연재된 <미스터 레인보우>를 묶어내며 진보하고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미스터 레인보우>에 와서 넉넉한 유머를 체득하고, 웃음의 이면에서 슬픈 삶의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방법을 더했다.
선동하거나 소리지르지 않아도 서로 다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때론 매우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주었다. 2000년에 발표한 데뷔작 <전국노래자랑>에서부터 유작인 <미스터 레인보우>까지 그는 꾸준히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소통의 방식은 우리 삶처럼 부박(浮薄)하다.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가 꿈이었던 식당 일을 하는 엄마와 엄마 몰래 밴드를 하는 딸이 전국노래자랑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마포종점>을 부른다는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은 <미스터 레인보우>에서 여성성이 강한 게이가 유치원 선생님이 된다는 풍경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제 그의 만화는 더이상 진행형이 아니다. 이전 작품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도 앞으로 이어질 독서에 대한 기대도 다 소용없게 되었다. 동질감의 연대를 통해 소통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 고 송채성 작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당신을 ‘좋은 작가’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기대를 준 한 작가의 죽음은 한국 만화의 비탄한 상황과 맞물려 우리에게 더 많은 숙제를 안긴다. 먼저, 일본 만화의 물량을 ‘여전히’ 끊임없이 게워내는 지겨운 출판행태와 거기에 기생하는 괴물 같은 대여체계는 송채성 작가만이 아니라 더 많은 젊고 새로운 작가들을 소리없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