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좋은 사람>에서 <최종병기 그녀>로 이어져온 다카하시 신을 뒤적이는 건, 여름날 물청소를 하다 깨진 교실의 유리창을 줍는 마음이다. 거기에는 누가 읽어도 부담없는 담백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여느 착한 만화들처럼, 삶에는 서늘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지만 그곳 옆에는 언제나 따뜻한 햇살이 있음을 믿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옆 살짝 비켜간 곳에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그럴 나이가 아냐’라고 말하는 냉담한 현실 인식이 있다. 거기에 반항하며, 내일 가장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할 게 분명한 사랑을 붙들고 있는 바보들도 등장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삼등신의 난폭한 개그도, 우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절벽 가슴 소녀의 섹스신도 있다.
그가 내놓은 두권의 단편집(시공사 펴냄)이 그 조각난 세계를 가지런히 주워 담아줄지 아니면 더욱 많은 조각들로 우리를 어지럽게 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카하시 신의 꾸준한 독자는 물론,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도 그의 진면목을 눈치채게 해줄 것임엔 분명하다.
먼저 <좋아하게 될 사람>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첫 연재작을 그리기 이전, 투고작을 들고 이런저런 출판사들을 뛰어다닐 때 그린 단편들을 모은 작품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만화가 지망생의 초기 단편들에서 풍겨나오는 서투른 향취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자. 그는 200쪽이나 되는 단편집을 일일이 새로 고쳐 그렸다고 한다. 그 성실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만화가의 집념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 시절의 자기 세계에 대한 짙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창 시절 육상을 했던 작가의 경험 때문이겠지만, 고등학교 역전 경주, 짝사랑 때문에 육상부에 가입한 여학생, 여름휴가를 혼자만의 조깅으로 보내는 여사원처럼 달리기와 연관된 생생한 이야기들이 많다.<안녕, 파파>는 <좋은 사람>의 번외편, 혹은 완결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6살 때 자신의 집에 하숙하던 유지 아저씨를 ‘파파’라 부르며 좋아했던 소녀가 이제 14살이 되어 그를 찾아간다. 이 밖에 라이텍스 인사부 계장인 니카이도 치에의 ‘맞선으로 식사’, 영업부 바람둥이 이나바의 고교 시절 바람담 ‘프레데릭’, 라이텍스 입사를 목표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여대생 코유키가 겪는 위기의 미팅을 네명의 선배 여사원들이 해결해주는 ‘코우키랑 놀자’ 등 담백한 사랑과 상쾌한 유머가 곁들여진 작품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