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시옹, <오디오-비전>(L’audio-vision)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하지 ‘들으러’ 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한 보다가 놓친 이미지를 아쉬워할지언정 미처 듣지 못하고 무심결에 흘려넘긴 소리 때문에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분명 영화는 시청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여 기억하게 된다. 또는 무언가를 귀기울여 듣는다고는 해도 대개의 경우 말(parole)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1990년에 초판이 나온 <오디오-비전>은 <영화와 소리>에 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미셸 시옹의 주저 가운데 하나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은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청각적-시각적 경험, 특히 시옹이 ‘시청각적 계약’이라고 부르는 바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제공하고 있다. 간혹 심리학적 용어들이 눈에 띄기는 하나, 엄격한 인지심리학적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옹의 다분히 직관적인 통찰의 결과물들을 명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옹이 영화사운드의 분석을 위해 제안하고 있는 다수의 생경한 용어들- 음원이 화면상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지칭하는 ‘아쿠스마틱’(acousmatique) 사운드, 청각적 현상과 시각적 현상이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 생겨나는 정신적 융합을 의미하는 ‘싱크레즈’(synchrese) 등- 과 분류법 등을 음미하면서 우리의 영화 듣/보기의 경험을 재고해보는 것은 꽤 흥미진진한 일이다. 한편 ‘소리와 영상 저 너머’라고 이름 붙여진 두 번째 장에서, 시옹은 지금까지의 유성영화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사운드 활용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텔레비전이나 뮤직비디오와 같은 매체들- 통상 시네필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곤 하는 매체들- 이 시네마(cinema)와 근본적으로 다른 소리의 활용을 제시하고 있음을 입증하면서 조심스럽게 그것들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한다.
어느 정도 교과서로 쓰일 목적으로 집필된 책이니만큼 시옹의 이전 저서인 <영화와 소리>나 특히 <자크 타티의 영화> 같은 작가론 등에서 빈번히 눈에 띄었던 문학적 표현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고 논쟁적인 쟁점들 또한 드문 편이다. <오디오-비전>의 영역판을 낸 클라우디아 고브먼에 의해 “이론가의 외피를 두른 시인”이라고도 일컬어진 바 있는 시옹 특유의 문장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옹의 이론적 작업의 전반을 개괄하고 영화사운드 이론의 현재를 파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안내서다. 유운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