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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보다 더 ‘쿨’해
2001-05-31

영화음악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O.S.T|소니뮤직 발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원제 High Fidelity)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된 스티븐 프리어즈의 지난해 작품은 넓게는 대중문화, 조금 구체적으로는 마니아적 하위문화에 삶의 일부를 저당잡히고 살다시피하는 ‘음악광’이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서 동성애자, 그것도 영국에 사는 아시아계 이주민 동성애자라는 ‘소수’의 시각을 아름답게 그려낸 바 있던 그는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소수’의 삶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존재 이유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그 소수의 존재들이 가지는 충일한 자기 정체성보다는 오히려 순진한 ‘맹점’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차원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을 들이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잭 블랙과 존 쿠색 같은 명배우들을 등장시켜 소심하고 섬세한, 사회의 주류 인간들 관점에서 본다면 약간은 어린애 같아 보이는 ‘주변부 음악광’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당연히 음악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일종의 삶의 대체물이다. ‘이 음반 좋아해요?’라는 물음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나와 동류의 인간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인간이다. 대중문화의 숲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호와 텍스트의 세계가 물질의 세계에 버금가는 물질성을 지니고 있다. 그 기호와 텍스트들은 말 그대로 몸의 흔적이자 때로는 몸 자체이다. 음악은 그들의 삶의 환경을 이루는 ‘숲’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몸을 이루고 있는 뼈와 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만일 사랑을 한다면? 바로 그 대목에서 감독은 진정한 몸과 텍스트로서의 몸 사이의 거리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물어보고 있고, 그 물음은 그대로 대중문화에 대한 하나의 깊이있는 문제제기가 된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최근에 나온 그 어떤 사운드트랙보다도 탄탄한 음악적 ‘정보물’이다. 맞다. 일종의 ‘정보물’이다. ‘이 노래 알아?’하고 물어봤을 때 ‘알아’라고 대답하면 그는 아주 ‘힙’(hip)한 사람이다. 그 정보들은 한 사람이 얼마나 쿨하냐를 판단하는 척도 역할을 한다. ‘이거 알고 이거 좋아하는 내가 너보다 더 얼터너티브하고 더 힙하다’라고 생각하는 90년대식 ‘얼터너티브 젊은이’의 머리 속과 가슴속을 채우고 있음직한 음악들이 사운드트랙을 채우고 있다.

사운드트랙은 60년대부터 활동해온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킹크스를 비롯, 밥 딜런, 벨벳 언더그라운드, 스티비 원더(흑인 노래도 하나쯤 들어가야 힙하다), 엘비스 코스텔로 등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담고 있다. 뮤지션들도 뮤지션이지만 선곡이 흥미롭다. 그들의 가장 대중적인 트랙에서 한발씩 비껴간, 마니아의 기호임직한 시각으로 곡들을 골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트랙들은 사실 이들 뮤지션의 베스트 트랙들이다. 그게 바로 ‘힙한 마니아’의 승리 아니겠나! 또 그들로부터 음악적인 주도권을 이어받은 90년대 뮤지션들, 예컨대 베타 밴드, 스테레오 랩 등 조금 ‘쿨하다’ 싶은 마니아들이 꼭 한번씩 거론하는 뮤지션들의 새로운 느낌의, 그러나 동시에 음악적으로 ‘고전적인’ 음악들을 싣고 있기도 하다.

이 사운드트랙은 90년대식 ‘얼터너티브 젊은이’의 때로는 ‘가장된 쿨함’의 관점에서 다시 모아진 팝의 역사라고나 할까. 어쨌든 힙한 느낌의 노래들을 많이 많이 싣고 있는 음반이다. 만일 이 음반보다 ‘더 힙하게’ 음악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꽤 힙하군. 그러나 속물적으로 잘난 채 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얼터너티브의 긍정적인 측면이자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이다. 대체되기 시작하면, 즉 대안으로 제시되기 시작하면 끝없는 ‘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터너티브는 약간은 영구 혁명과 비슷하다.성기완|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