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al>|워너뮤직 발매
한때 ‘얼터너티브’했던 밴드가 메이저 세계에서 스타덤에 오른 뒤 선택의 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하나는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패러디(self parody) 혹은 자기부정을 단행하는 일이다. 앞의 길은 밴드의 색깔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다’는
평을 받고, 후자는 나름대로 도전적이지만 ‘밴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평을 받는다. 부단히 혁신과 실험을 단행하는 길도 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고, 다른 사람이 수행한 혁신을 ‘착취’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런 몇 가지 선택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이 메이저 세계에서 게임의
법칙이다. 문제는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느냐, 슬기롭게 제어하느냐 여부일 것이다.
R.E.M은 ‘성공을 잘 관리한’ 경우에 속한다. 이번에는? 드러머 빌 베리(Bill Berry)가 탈퇴한 뒤 3인조로 발표한 첫 작품 <Up>(1998)이
‘실험적’ 방향을 취했다면, 새 음반은 실험의 성과를 이전의 정체성으로 뒤덮고 있다. 첫 싱글로 발표된 여덟 번째 트랙 <Imitation
of Life>나 (다음 싱글로 발표될 듯한) 일곱 번째 트랙 <All I Want>는 ‘10년 전의 R.E.M’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R.E.M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쟁쟁거리는 기타 아르페지오, 유려한 멜로디(와 후렴부의 코러스)가 진행되면서 오케스트라가
튀지 않게 삽입되어 있다. 그렇지만 편견을 가지고 본다면, 이 곡들은 ‘50만장 이상은 팔아야 하는’ 메이저 음반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수록된
곡이다(실제로 첫 싱글곡을 앨범에서 빼려고 했다가 음반사쪽 만류로 수록했다고 한다). <I’ve Been High> 같은 트랙에서는
건반악기가 주도하면서 전자 효과음이 많이 삽입되었고, 이들이 록 음악의 악기와 함께 무성한 음향의 짜임(texture)을 만들어낸다. 한편
뒤에 위치한 트랙들(특히 <Summer Turns to High>)에서는 부드러운 도취감을 안겨주는 프로듀싱이 귀를 잡아끈다. 음악깨나
들었다는 사람은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인물(답: 이노와 윌슨)의 영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사는 이전처럼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수준은 아니지만 아직 충분히 시적(詩的)이다. <Reno> 같은 곡에서 자기 패러디(“You’re gonna be a star”)가
있지만 위악적 제스처는 없어서, 예술가적이고 내향적인 분위기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결국 <Reveal>은 ‘드러머 없는 3인조 밴드’가 만들어내는 ‘재건의 우화들’(<Fables of Reconstruction>:
1985년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인 셈이다. 하지만 이건 ‘음악인의 경력’이라는 관점에서의 평가다. 현재 대중음악의 상황에서 이 음반은 어떤
가치를 가질까. 아이로니컬하게도 팝 음악계는 20년 전 그들이 얼터너티브의 길을 개척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MTV와 라디오는
춤추는 아이돌 스타와 무의미한 고함을 지르는 밴드들로 가득하다. 자신들의 지위를 제외하곤 20년 동안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메이저
스타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다시 한번 시대를 벗어나는(‘Out of Time’) 태도를 가지고 투덜거리기(‘murmur’)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기타리스트 피터 벅이 비행기 안에서 ‘행패’를 부린 사건(2001년 4월23일)이나, 마이클 스타이프가 ‘아무도
놀라지 않는’ 커밍아웃을 단행한 사건(2001년 5월15일)은 이런 상황과 ‘우회적으로’ 관련되는 것 같다.신현준|문화수필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