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언 헤커의 <Infinite Love Songs>와 다음 앨범인 <Rose>
우울의 예술적 힘을 발견한 것은 낭만주의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이 ‘안으로 타들어가는 불’은 근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붓의 하나가 된다. 유배당한 알바트로스의 날갯짓으로 근대 예술의 존재이유를 자리매김한 보들레르도 우울을 노래했지만, 역시 우울의 고향은 낭만주의의 땅 독일이다. 우울의 끝은 자살이다. 슈만과 베르테르. 자살은 시궁창에서 사는 고귀한 영혼의 상승에 불을 붙이는 로켓연료다. 음유시인의 전통과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는 우울한 낭만주의 예술가의 그림자가 오늘 탈현대의 포크 가수들에게까지 드리워진다. 근조 엘리엇 스미스.
우울의 메카 독일 땅에서 우울한 청년 가수 하나가 음반을 낸 것이 눈에 띈다. 이름은 막시밀리언 헤커(Maximilian Hecker). 스물네살의 꽃다운 나이인 그의 음반 두장이 거의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라이선스로 발매되었다. 나이도 꽃이고 생긴 것도 ‘꽃’이다. 포크 계열의 남자 얼짱이라고나 할까. 모델로도 활약한 경험이 있다 한다. 데뷔 앨범인 <끝없는 사랑 노래>(Infinite Love Songs)와 다음 앨범인 <장미>(Rose)가 이번에 나온 두장의 앨범.
막시밀리언 헤커는 독일 청년이지만 영어로 노래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영어로 노래하는’ 보편적 전통을 가진 특수한 문화집단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들은 존재한다. 영어로 부르지는 않아도 데모 테이프를 만들 때 최소한 영어로 흥얼거리는 이 보편집단은 2차대전 이후의 어떤 음악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 남부의 흑인 떠돌이들이 부르는 블루스를 알고 영국 북쪽의 사투리 쓰는 애들을 알고 통기타를 치는 유대계 미국인이 부른 노래들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 태도의 기원에 뭐가 있는지 알고 독일에서 미니멀하게 미치는 크라우트 록을 알며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자이브를 알며 스웨덴의 아이들을 알고 일본 시부야의 아이들을 알며 프랑스 언더그라운드 하우스를 안다. 그들은 이들 ‘영어로 노래해온’ 음악가들의, 문화사 속에서의 특수한 어떤 대목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 정보의 받아들임과 되새김을 할 줄 아는 것 자체가 요즘의 ‘영어로 하는’ 전통 속의 노래들을 새롭게 한다. 그 전통을 ‘팝 뮤직’의 전통이라고 한다면, 요즘의 팝 세상에서 그걸 모르고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팝은 재텍스트화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막시밀리언 헤커 역시 자기가 하는 노래가 그 팝 세상의 지형에서 어떤 지점에 꽂히는지 잘 알고 있는 친구다. 탁, 들었을 때, 아, 이건 요즘 나오는 우울한 청년들 계통의 노래구나 하는 일감이 든다. 벨 앤 세바스천, 엘리엇 스미스, 약간 계통은 달라도 피시만스, 그리고 모하비3, 트래비스,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이 ‘우울한 청년들’이 탈현대의 감수성 일부를 이끌어간다. 테크노 비트가 엑스터시 알약의 힘을 받아 사람들을 기계가 되는 쾌락 속에 빠뜨리는 동안 우울한 청년들은 더 가라앉는 쾌감을 즐기는 친구들에게 역설적인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막시밀리언 헤커는 너무나 우울하여 자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는 적당히 우울하다. 다시 말해 팝적이다. 우울한 선율의 끝에 무언가 달콤한 사탕이 발라져 있다. 그래서 당의정처럼 그 우울을 부담없이 꿀꺽, 삼킬 수 있다. 대신 입 속에서 오래 쓴맛을 음미할 수는 없고, 나풀나풀, 듣는 사람의 귀는 다음 곡으로 이어진다. 첫 앨범이 두 번째 앨범보다 약간 더 하드코어다. 과감하게 소음을 쓰는 대목도 있고 멜로디나 사운드가 더 흐트러져 있다. 두 번째 앨범에는, 이 노래, 뜨겠는걸, 싶은 좋은 노래들이 몇개 들어 있다. 그런 곡들은 보너스 트랙을 가지고 있다. <바보>(Fool) 같은 노래는 수준있으면서도 부담없는 팝의 대열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노래다. 포크적인 멜로디에 부드러운 테크노 비트를 결합한 <데이 라이트>(Day Light) 같은 곡도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멜랑콜리한 특이한 느낌을 지닌 곡이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감정을 콕콕 자극하는 가사도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앨범 속지에 가사들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어서 그런 것들을 감상하기가 편하다. 일본의 라이선스 음반을 구경하면서 그 ‘번역’을 부러워했었는데, 이 앨범이 그 부러움의 일부를 해소시켜주는 것 같아 반갑다.
2집의 짜임새를 보면 헤커의 앞길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이 짜임새는 한편으로는 그의 장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팝 세상의 시스템에 너무 착 달라붙으면 나중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그 점을 경계하면서 가야 할 독일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