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0월1일 첫 창간호가 발행된 <월간 만화 보물섬>은 100% 만화로만 구성된 최초의 잡지였다.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으로 대변되는 아동용 교양잡지를 버리고 두툼한 만화잡지를 선택했다. <월간 만화 보물섬>의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잡지사들도 기사와 동화를 정리하고 만화로만 잡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한권의 잡지에 만화만이 아니라 사진, 기사, 동화 등이 종합적으로 수록된 종합잡지 시대는 <월간 만화 보물섬>의 성공으로 인해 무대의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교양잡지가 나오던 60∼80년대 소년들은 매달 잡지가 나오면 먼저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그 다음에 재미없는 만화를 보고, 그리고 기사를 보고, 마지막으로 소설까지 읽으며 한달 내내 충실히 잡지를 소비했다. 아무리 재미없고 교양이 넘치는 만화나 기사라도 결국에는 소비되었으니 월간지의 위력은 그만큼 출중했다. 하지만 어린이 잡지 시장이 만화잡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90년대 들어 일본 만화가 만화의 주류가 된 이후 ‘교양잡지’들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만화는 어린이 문화에서 청소년 문화로 변화했고, 어린이 만화는 사라져버렸다. 만화는 소중한 시장을 잃었고, 어린이들은 상상력과 친구를 빼앗겼다.
2003년 10월, 어린이 종합잡지의 종말을 예고한 <월간 만화 보물섬>이 창간되고 21년이 흐른 가을에 <고래가 그랬어>가 어린이들을 찾아왔다. ‘떳떳하게 그리고 함께’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어린이 ‘교양월간지’가 새롭게 복원된 것이다. 세월이 지난만큼 ‘교양’의 의미도 변화했다. 20여년 전 종합잡지에서 보았던 ‘과학, 문화, 상식’ 기사 대신 ‘인권, 차별, 평화’가 중심을 차지했다. 만화도 많이 달라졌다.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를 다룬 <앗살람 알라이쿰>이나 전태일의 삶을 만화로 옮긴 <태일이>와 같은 작품은 이 잡지가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었을 작품들이다. 하지만 잡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만화의 구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었다.
<고래가 그랬어>에서 다른 기사 페이지에 비해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광고페이지와 차례 5페이지를 제외하면, 총 171페이지 중 125페이지가 만화다. 73%다. 창간의도를 읽어낼 만한 창간사는 없지만, 적어도 잡지의 구성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고래가 그랬어>가 ‘교양’을 전달하는 매체로 ‘만화’를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안타깝게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만화는 대부분 ‘교양’이 전면에 나선다. 이건 아니다. <보글보글 부엌> 같은 요리만화를 보자. 이 만화는 ‘요리만화’가 아닌 ‘레시피’ 만화다.
요리하는 법을 설명하는 만화란 말이다. 이건 ‘만화’라기보다는 캐릭터를 활용한 레시피다. 요리만화가 독자들에게 만화로 읽히기 위해서는 요리를 만드는 법보다는 요리를 둘러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흥미로워야 한다. <맛의 달인>이나 <초밥왕>이 인기를 끈 이유는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를 둘러싼 이야기 때문이다. <대사각하의 요리사> 같은 경우에는 요리를 통해 문화와 사회, 정치와 외교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레시피는 맨 마지막 페이지에 1페이지로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무려 4페이지가 레시피다. 4페이지를 레시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8페이지 정도의 이야기가 있는 편이 좋다.
어린이에게 만화를 이용해 ‘교양’을 전달하기 위해서 만화는 ‘교양’보다 ‘이야기’에 충실해야 한다. <고래가 그랬어>에 이야기에 충실한 만화는 <태일이> <신세기 소년 파브르> <열무낭자> <무일푼 쉽고 재미있는 만화교실> 정도다. <뚝딱뚝딱 인권짓기>나 <너 텔레비전 끌 줄 알아?>와 같은 만화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런 만화가 어린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좀더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가벼운 만화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가벼운 만화들이 먼저 읽히고, 그 다음에 ‘교양’을 내세운 만화들이 읽히고, 기사가 읽히고 이런 순서를 밟아나가며 한달 동안 차분하게 소비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라기보다는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관습에 충실한 몇몇 작품들에는 어린이 만화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더 필요할 듯하다. 좋은 텍스트가 없다면, 국내에 번역된 루이 트롱댕과 요안 스파의 만화를 권한다. 상상력을 키우는 만화그림책이라는 시리즈로 10여권이 번역되었다.
전체 잡지의 분량도 한달을 즐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화의 독해를 방해하는 디자인의 과잉도 눈에 거슬린다. 모든 만화가 컬러로 구성되어 있는데, 흑백만화의 편수를 늘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흑백만화에는 위대한 흑백의 상상력이 존재한다. 그 상상력을 구태여 컬러로 막을 필요는 없다. 잡지니까 사진도 더 많았으면 하고, 기사도 더 충실해졌으면 한다. 기사를 만화로 풀어내는 르포만화나 인터뷰 만화와 같은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는 것도 좋다. 상투적인 축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계속 진보하며 발전하는 <고래가 그랬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인하/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