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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신선한 활기를!
2001-05-10

이 지면을 통해 해외 애니메이션을 소개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가급적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장편 보다는 단편, 그것도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유럽 중심의 단편에 많이 편중됐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순수 단편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조류보다는 이미 거장이나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주로 소개해왔다. 실제로 이 메일을 통해 그 부분을 지적하면서 ‘선정의 편협함’을 지적한 분들도 많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미국이나 일본의 장편들은 이 지면이 아니더라도 최신 정보나 다양한 리뷰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나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하고, 진지하게 감상을 했거나 또는 정말 즐겁게 본 기억도 없으면서 피상적인 정보만 나열한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보다는 ‘편협하고 한정된 영역’이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느꼈던 감상이나 생각들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아는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해왔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작가들보다는 명망가에 치중했다는 지적은 솔직히 요즘 크게 반성하고 있다.서론에 이렇게 장황하게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제부터 소개하는 작품들은 이제껏 소개한 작품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개했던 작가들이 이미 각종 페스티벌이나 영화제를 통해 어느 정도 평가가 된 ‘알려진 스타’라면 지금 소개하는 작품들의 작가들은 앞으로 한번 주목해볼 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이들은 <애니메이션 월드 매거진>(animation world magazine)이라는 애니메이션 전문 웹진에서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Fresh From The Festivals’란 이름으로 소개한 젊은 작가들이다. 이 작품을 선정한 이는 미국의 채프먼대학 영화과 조교수이며 <애니메이션 저널>의 편집자인 모린 퍼니스이다. 이들 중 일부 작품은 올해 앙시를 비롯한 몇몇 페스티벌에서도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린 퍼니스는 모두 13편을 소개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브람스의 자장가>(Brahm’s Lullaby)이다. 폴란드 출신의 애니메이터 마시엑 알브레트가 만든 2분짜리 애니메이션인데,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득세한 요즘 추세와는 달리 고풍스런 ‘컷-아웃’과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산뜻한 색상과 단순하지만 따스함이 넘치는 그림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의 매력은 제목이 말해주듯 영상과 유려하게 어울리는 음악이다. 우리 음악 교과서에도 실린 <브람스의 자장가>가 흑인영가풍으로 울리는데, 노래하는 이는 아론 네빌이다. 조금은 중성적인 여린 음성에 깊은 감성으로 부르는 자장가와 평화롭고 안온한 숲속의 동물들의 모습은 번쩍거리는 시각효과와 엽기적인 위트로 오염된 눈을 정말 편안하게 해준다.

니콜 휴이트의 7분짜리 단편 <인디비두>(In/Dividu)는 지난해 히로시마 페스티벌에서도 소개됐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의자 사무용 냉장고와 사물(Animated objects)과 사진(photos)을 이용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회화’식 애니메이션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다양한 사물과 확대 사진을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엮어 신선한 느낌의 역동감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사진에 크게 확대된 대상은 신체의 다양한 각 부분. 눈 피부, 유두, 벗겨진 머리, 코, 심지어 남자의 성기도 등장한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없지만 일정한 리듬에 맞춰 전개되는 사진과 의자들의 움직임은 현대 무용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모린 퍼니스는 그 움직임을 ‘댄스’라고 표현했다. 폴 부시의 <가구의 시>(Furniture Poetry) 역시 일상의 세간들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처음 시작할 때 푸른 색과 붉은 색 사과였던 과일들은 불규칙한 간격으로 색이 바뀌고 나중에는 배나 포도같이 모양이 다른 과일로 변한다. 이어 각종 가구나 집기들이 한데 어울려 움직인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음악이 없이 집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새소리나 일상의 소음들을 배경효과로 쓰고 있는데 그 소리의 흐름에 움직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마치 ‘소음의 멜로디에 맞춘 소품들의 춤’이라고나 할까? 일상의 사물에 다양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참신한 소품이다. 김재범|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