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 O.S.T | 록 레코드 발매
최민식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정말 인상적인 영화였다. 속초 부둣가에 앉아 장백지가 보낸 편지를 읽을 때 담배를 물려다가 떨어뜨리며 우는 장면에서는 <길>에서의 앤서니 퀸이 연상되었다. 내러티브의 견고함은 좀 떨어지나 그 약점을 넘어서는 어떤 영화적인 힘이 이 영화를 울림있는 영화로 만들고 있다. 내 생각에 그 힘은 ‘쓰레기들에게 일종의 회한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일말의 인간됨’을 관찰해내는 데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이나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게 관객에게 전해진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그러한 이해가 신파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차분한 시선이 영화를 끌고가고 있다. <박하사탕>에서 내면적인 흐름을 짚어내는 음악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재진은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차분함을 음악적으로 소화해내고자 한다. 그 차분함의 일차적인 표현은 ‘리듬 파트’의 활력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다. 이재진은 리듬이 전면으로 드러나서 그 리듬감에 영화의 호흡과 관객의 호흡이 ‘물리적으로’ 조절되는 일이 없도록 리듬 악기들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 리듬 악기들을 쓰지 않으면 일단 분위기는 감성의 내면적인 리듬을 좇아가는 방식으로 가닥이 잡힌다.
아주 기본적인 리듬의 굴곡을 표현하기 위해 피아노가 맨 밑바닥에 깔린다. 이재진의 음악 만들기에서 피아노는 늘 기본 악기이다. 그는 보스턴의 버클리음악원 영화음악과를 나온 프로페셔널 뮤지션이다. 프로페셔널 뮤지션에게 가장 친숙한 악기가 바로 피아노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차분하기만 하면 내면의 분위기조차 제대로 전달이 안 되며 재미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링 악기들로 떡칠을 하여 슬픈 멜로디가 죽죽 흐르게 만들면 신파가 된다. 그 사이에서 영화음악가들은 고민해야 한다. 마치 ‘241km로 달리면 사고가 나고 239km로 달리면 지는’ 자동차 경주의 이치와 비슷하다. 수위 조절을 잘해내야 한다. 이런 고민 속에서 이재진이 택한 악기들은 오보에와 클라리넷이라는 목관악기들이다. O.S.T CD의 첫 트랙을 장식하고 있는 <파이란>이라는 테마음악의 멜로디를 오보에가 불고 있다. 오보에의 나무통 울림 소리는 고음이면서도 너무 북받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멜로디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인색하지도 않다. 오보에는 다시 <아침 자전거>라는 트랙에서도 쓰인다. 그리하여 오보에는 파이란의 악기가 된다. <희망>이라는 트랙에서는 클라리넷이 멜로디를 불고 있다. 또한 절제된, 그러나 매우 인상적인 <강재의 거울>에서도 클라리넷이 효과를 발휘한다. 클라리넷은 오보에보다 약간 퉁명스럽고 남성적이다. 그러나 역시 과도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 없이 차분하게 주어진 멜로디를 소화하는 악기이다. 클라리넷은 강재의 악기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악기들이 부는 멜로디가 너무 묻혀 있다는 것. 최민식이나 장백지의 연기가 확연히 자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 음악은 조금 수줍은 듯 안으로 숨어 있다. 작가는 아마도 멜로디가 전면에 불쑥 튀어나오는 걸 의도적으로 경계했을 것이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의 연기가 이토록 강렬할 때에는 ‘그들의 테마’들도 확실하게 나서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대조를 통해 섬세하게 인물들의 성격이 음악적으로 암시되기는 하지만, 때로는 멜로디들이 좀 확실하게 선을 그어 인물들과 강하게 매치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는 해도 근래 보기 드문, 절제된 음악적 언어들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를 담은 사운드트랙이다. 막문위의 노래 <러브>를 장백지가 수줍게 부를 때, 그 반주를 맞는 듯 안 맞는 듯 화면 바깥에서 처리해주고 있는 대목도 흥미롭다. 성기완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