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으로 부지런하게 혹은 바지런하게 산과 절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아픈 발바닥과 공기상쾌한 피로감, 그리고 세속의 찌든 때가 휘발하기 직전 땀의 광경 속에 나타나는, 분명 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집보다 더 안온하게 자리잡은, 다시 동시에 인간-자연 너머 청정 자체가 쉬는 안도의 한숨 같은 광경으로 절을 만나는 게 제격이겠지만 그럴 성격이나 사정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제격이다.
더군다나 요새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신세대적’으로, 젊게 제격이다. 심지어 ‘절 취향’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조차 이 책을 한번 읽어봄직하다. ‘구세대’ 절책들은 너무 고답적이거나 딱딱하거나 아니면 불교에 대한 맹신(불교는 탈이론적 종교라서 맹신이 정말 무섭다)으로 건물(혹은 불상, 탑 등등) 미학을 대신하거나 그랬었다.
이 책은 우선 사진의 내용과 수준과 배치가 정말 오래 절을 다녀본 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닮은 듯 적절하다. 색감이 다소 화려한 듯하지만 절의 시간적 낡음을 분식하는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살아 있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문에 은은히 밴 시적 정취가 산문의 격을 높일 뿐 아니라 우리를 절의 마음속으로 곧장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 시도 절도 산문도 젊어지는 대목이다. 가령 다음 같은 글.
‘초겨울 노루꼬리처럼 짧은 햇살이 머물다가 산등성이를 넘어가버리면 추녀마루는 어느새 산그늘에 젖어 쓸쓸한 빛이 역력해진다. 항아리 속같이 깊은 산골이라 유난히 밤이 길다는 곳, 극락전 뒤란의 대나무숲이 몸을 뒤척이며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절마당에는 하나둘씩 초롱초롱한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표4글로 특별히 뽑아놓았지만 대부분의 글이 인용문 수준에 달하고 있다.
저자 이형권은 본 적이 없는데,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발의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약력 보니 알겠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문예운동지 <녹두꽃>으로 등단을 했네…. 참으로 요란굉장하던, 운동권의 한 유파를 당당히 선언하고 이끌던, 거의 피투성이로 이끌던 그 잡지 출신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토록 고결하고 유구한 서정에 달할 수 있었을까? 그가 걸었던 길은 또 얼마나 고되고, 고된 만큼 아름다웠을까? ‘피안의 겅계가 어찌 먼 곳에 있으리’(개심사),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과 애달픈 상사화’(선운사), ‘빗장을 걸어잠근 깨달음의 공간’(화암사), ‘진리의 바다를 향해 떠나가는 배’(해인사)…. 아 정말 가보지 않아도 간 듯하구나. 모든 길은 통하는구나….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